[광화문]임종석 vs 황교안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4.23 04:25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던 황교안은 문재인 정부와 하루 겹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 국무총리가 바로 황교안이었다. 취임식을 마친 문 대통령은 황교안과 오찬을 함께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직전이던 임종석은 황교안과 인사를 나눈다.

“오랜 만입니다”.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말 같지만 둘 사이 관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오래 전 기억을 전제로 한, 진짜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둘의 만남은 1989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황교안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 2부 소속 검사였다. 임수경 방북 사건을 맡았던 황교안은 주동자였던 임종석을 수사한다.

당시 임종석은 뜨거웠고 황교안은 차가웠다. ‘공안 검사’와 ‘운동권 스타’의 대면은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의 만남이 된다. 28년 만이다.

동거는 하루에 끝난다. 황교안의 사표가 문 대통령의 취임 다음날 수리되면서다. 차기 총리 내정자의 국회 임명 동의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현 여권의 황교안에 대한 시각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종석은 젊은 청와대를 상징했다. 지난해 마지막날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는 정치적 안정감과 성숙함도 보여줬다.

임종석이 올해 초 청와대를 떠나자 공교롭게도 황교안이 정치권에 등장한다. 정치 신인으로 제1 야당 자유한국당 대표 간판을 단, 나름 성공적 데뷔다.

곧장 정부 여당을 향한 총공격을 진두지휘한다. 당 대표 취임 두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도 연다. 태극기 부대까지 합류한 집회다. 거리에서 ‘좌파 독재 ’ ‘문재인 STOP’ 등을 외친다. 과거 공안검사의 아스팔트 가투(街鬪)는 사뭇 아이러니인데 황교안의 진화된 현재 모습이다. 빨간색 점퍼처럼 뜨겁다.

투쟁이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 정치는 결국 선거로 귀결된다. 무엇보다 황교안 스스로 선거에서 살아야 한다. 그는 총선 출마와 관련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당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감당할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당내 기류는 비례대표설, PK출마설, 수도권 출마설, 종로 출마설 등 다양하다. 그중 눈에 띄는 게 종로다. 임종석이 정치 재개를 도모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 임종석은 이사(서울 종로)를 계획했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제반 경제 여건 탓이다. 서울 은평구 집을 팔아야 종로에 전셋집을 구하는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집값 잡기’와 ‘거래 실종’ 사이의 고민을 현장에서 배운다.

여당 인사로 변명, 해명, 설명을 할 법 하지만 말을 아낀다. 대신 ‘솔직한 인정’을 강조한다.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이고 이것은 전적으로 여당 책임이라고 인정한다. 솔직해야 국민과 신뢰가 깨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야당의 공세에 맞서 전략적 방어일수도 있는데 임종석의 진화 모습이다. 차분하면서 차갑다.

이렇게 총선 1년을 앞두고 임종석과 황교안은 정치에서, 종로에서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 열정과 냉철이 중첩된다. 인식도 엇갈린다.

황교안은 “무덤속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규정했다. 반면 “황교안 체제는 퇴행이자 촛불에 대한 반박”이라고 임종석은 진단한다.

선거에서 이만한 상품은 없다. 총선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가치로 ‘크게’ 대결하는 장이어야 한다. 언제까지 말꼬리 잡기, 막말, 무의미한 정쟁 등에 머물 수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승자는 결국 어제가 될 오늘보다, 오늘이 될 내일을 말하는 사람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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