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경영 없이 좋은 기업 나올까"

[the300][the300][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나라를 세운 기업][3]-②가장 존경받는 기업 15년째 1위…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쓴 편지

LA, 샌프란시스코, 리들리(미국)=이재원 기자 l 2019.04.24 04:01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앞줄 왼쪽)/사진=유한양행


예나 지금이나 기업 경영은 투명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네. 사주의 이익도, 구성원들의 이익도 중요하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기업의 이익을 환원하는 거라고 생각하네. 사회 없이 기업이 있을까? 우리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유도 그거라네.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업의 첫 걸음은 투명한 경영과 원칙경영일세. 어떤 이들은 윤리경영이라고도 부르던데 이름이 뭐 중요하겠나. 깨끗하게만 한다면.

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을 말세줌세. 그땐 '약'을 판다는 것이 허위, 과장 광고의 대명사였다네. 모든 약을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했지.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네.

신문 광고로 제품의 용도를 밝히고, 성분을 밝히고, 만든 사람까지 적었다네. 당시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지. 영리한 영업전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네만, 투명경영이 내 철학이자 전략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닐세.

다시 유학을 떠나기 직전인 1936년에는 1주당 50원씩 총 1만주의 주식을 발행해 자본금 50만원의 주식회사로 회사를 탈바꿈했다네. 국내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라고 하는데, 직원들과 기업의 이익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내 원칙 때문이었네.

독립 이전에나 이후에나 내 원칙이 또 있었다네. 바로 성실납세와 정경유착 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기업의 존립 바탕인 국가에 성실하게 납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와 기업은 철저히 분리돼 투명한 경영을 해야한다"는 내 원칙 덕분이기도 했지. 정치자금을 내지 않은 탓에 수 차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오히려 성실납세만 드러나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다네. 절대 가족에게 기업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일세. 투명 경영을 위해서야. 나는 내 회사를 경영에서 은퇴하던 1969년 조권순 전무에게 승계했다네. 국내 최초의 전문경영인 제도의 실시라고도 하더구먼.

물론 그때 나의 친척들도 모두 해고했지. 아들까지 해고하고 주식도 모두 처분했다네. 내 친척이 회사에 있으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지. 아직도 이 체제가 잘 이어지고 있어 기뻐. 

역대 유한양행 CEO 모두가 유한양행 평사원부터 시작한 이들이지. 지금 CEO인 이정희 대표도 1978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지? 나와 함께 일하지 않았지만, 잘 해주리라 믿네.

아무튼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 그리고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 모두 기억해주길 바라네. 번뜩이는 혁신도, 깜짝 놀랄 성장도 투명과 원칙 경영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100년 전 민족자본이 지금의 기업에게 보내는 편지=앞선 편지는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머니투데이가 100여년 전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위해 기여한 민족자본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가공한 글이다.

해당 편지는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등의 자료를 토대로 각색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사진제공=외부사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