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주기]떠난지 10년…노무현 이야기, 그리고 그가 남긴 미래

[the300]1988년 국회에 '불덩어리'로 등장…남은 이들의 방향 돼 주는 '북극성'으로

김성휘, 오상헌, 조철희, 김하늬, 김평화, 이재원 기자 l 2019.05.23 05:05


[노무현 10주기]불덩어리에서 별빛으로..盧의 가치 재조명
[the300]민주주의·평화 추구하며 금기에 도전…"통합 지향"

"진짜 불덩어리네."

1988년 인권변호사 노무현, 운동권출신 이해찬은 각각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초선의원이 됐다. 13대 국회다. 두 의원은 나란히 노동상임위에서 활약했다. 이해찬 의원의 대학 후배이자 보좌관이던 유시민도 그렇게 노무현 의원을 접했다.

31년이 지난 2019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뒤를 이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된 유시민 전 장관은 그를 "불덩어리"같았다고 회고했다. '약자'의 편에 섰던 상임위 활동은 물론, 5공청문회 등 열정적 의정활동은 다른 정당, 다른 방(의원실) 소속 보좌관의 마음도 움직였다.

◇손해 봐도 금기에 도전, 지금도 미완성=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한지 올해로 10년. 노 전 대통령만큼 재임기간 내내 강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대통령도 드물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국회가 탄핵을 의결했다. 대통령직은 곧 회복했지만 임기 내내 위기였다. 정책실패도 적잖다. 그는 늘 '통합'을 꿈꿨으나 분열과 반목이라는 이미지를 피하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사회 각 분야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름 석자보다는 '노무현정신' '노무현가치'가 더욱 자주 소환된다. 민주주의, 민생경제, 한반도평화라는 3종세트가 기본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도 끊임없는 관심과 재조명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언제나 금기에 도전하고 부딪친 정치역정에 답이 있다.

그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한 일에는 멈추지 않았다. 원칙과 상식이 무기였다. 대통령이 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 노무현은 개혁과 통합을 꿈꿨다. 영호남 지역구도 해소와 여야의 공존도 '통합'이었다. 한반도평화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전까지는 공론화조차 힘겨웠던 일이다. 참여정부에 몸담은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한중일 3국의 평화공존도 추구했다고 입을 모은다.

모두 기존 정치질서에선 무모하다고 여겼던 난제들이다. 개인적 관심사여서가 아니다. 그런 금기와 편견들이 민주주의, 경제발전, 한반도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런 목표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는 점도 노무현정신을 계속 주목하게 만든다.




◇새로운 노무현..文 "그를 넘어 앞으로 가야"= 그의 유산은 문재인정부에도 진하게 배어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국가'라는 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는 문재인 대통령이 실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행사장 참석자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대통령이었다면 문 대통령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껴안아주면서 공감한다. 문 대통령은 경호를 최소한으로 낮췄다. 북한과 대화하면서도 국방력과 외교력 강화에 매진한다.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월요일마다 주례 오찬을 하던 전통도 부활했다.

올해 노무현재단의 10주기 화두는 '새로운 노무현'이다. 이걸 착안한 주인공은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문 대통령도 자신의 2012년 대선후보 수락연설, 2017년 대통령 취임사를 맡겼던 인물이다.

재단 이사이기도 한 윤 전 대변인은 21일 '새로운 노무현'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무현 정신을 더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그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노 대통령은 통합을 지향했다"며 "그 점에서 대연정 문제와 이라크 파병까지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2014년 윤 전 대변인의 책 '기록'에 추천글을 썼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라며 "무엇보다 올바르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명을 남기고 싶어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도전했던 가치, 고난과 좌절은 우리가 갈 희망과 미래의 다른 이름"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되 그를 넘어서서 앞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10주기]"민생은 정책에서"…'노무현 정신' 계승한 법안들
[the300]김경수·최인호 '국가균형발전특별법'…전해철 '국가공론화위원회 설치법' 등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6월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지 10주기가 됐지만 그와 함께 정치를 시작하고 꾸려간 이들은 아직 남아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서 보좌하며 균형, 통합, 공정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신’을 체화한 이들이다. 훌쩍 성장한 이들은 국회에서,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에서 법안으로, 정책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가 지금은 국회를 떠난 김경수 경남지사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린 김 지사는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처음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지 2년여 만인 지난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내려놨다.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맡아 노 전 대통령의 끝을, 그리고 이후까지 돌본 김 지사다. ‘노무현 정신’을 체화했다. 김 지사가 의원으로 2년간 일하며 대표발의한 53건의 법안들 역시도 이같은 정신이 묻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공정경쟁·상생법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들과도 맥이 닿아 있지만,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도 엿볼 수 있다.

김 지사는 국회에 입성해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을 첫 법안으로 내놨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이 외에 노동자들과 성과를 공유하는 중소기업을 우대지원하는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등이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외에도 김 지사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으로 활동하며 중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과 전통시장및상점가육성특별법,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중소신용카드가맹점 대상을 확대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창업 중소기업 세금 감면 일몰기한을 연장한 지방세특례제한법 등을 내놨다.

김 지사가 ‘일하는 국회’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하고, 강조한 것도 “민생은 정책”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지사는 의원직 사퇴 전 마지막 발의 법안으로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했다. 20만명 이상이 법안 상정·심사를 요구하면 상임위에 자동상정시키고 국회가 심사에 들어가도록 하는 법안이다.

김 지사는 지역균형발전 법안들도 다수 발의했다. 국가균형발전은 노 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다. 국가균형발전 시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역 혁신사업에 규제 특례를 부여한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 등이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사진=이동훈 기자


김 지사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해 국가균형발전 등에 매진하고 있는 의원들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첫 연을 맺은 최인호 민주당 의원(부산 사하구갑)이다.

최 의원은 지난해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심사’를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여부를 재검토하는 한편 정권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 포석을 만들기 위해서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며 ‘친노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꾸준히 발의하며 노 전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던 행정수도 건설의 ‘후속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세종시 건설 지휘는 물론, 현재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과 민정수석을 거친 전해철 민주당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과 관련한 법안을 여럿 냈다. 전 의원도 하도급거래 공정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 관련 법안 등 이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사회적 갈등 이슈를 상시 조정하는 ‘국가공론화위원회’ 설치 내용을 담은 ‘국가공론화위 설립·운영 법안’이다. 법안은 공론화위가 총 사업비 5000억 원 이상인 사업 등에 대해 공공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그 결과를 해당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노무현 10주기]공수처·부동산… 盧의 정책, 그가 남긴 흔적
[the300]'실패'로 여겨졌던 정책, 10여년 뒤 재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 그의 잔상은 곳곳에 남아있다. 그 당시, 관철되지 않았기에 '실패'로 치부됐던 일부 정책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숨을 얻고 있다.

◇2004년 발의된 공수처법, 15년後=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검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 방안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고위직,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별도 수사기관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으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4년 11월 정부안으로 '공직 부패 수사처'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27일 삼성비자금 의혹 특검법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을 수 있으므로 공수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대선 때 각 당이 모두 공약했다"며 "법무부와 검찰의 이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을 거쳐서 정식으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검이 국회가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끄집어내서 쓸 수 있는, 정치적 남용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공수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가 진정으로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면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최대의석을 확보, 여소야대 국면이던 국회는 끝내 공수처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된 후 공수처 도입 논의는 한동안 잠잠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 정부는 같은해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공수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법무부는 10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할 독립기구인 공수처 설치를 위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공수처법 통과를 반대했다. 육탄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결국 공수처 설치법안은 선거제 개혁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난달 지정됐다.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 부동산 가격 폭등"=노 전 대통령 집권 전후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만큼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드렸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쉽게 잡히진 않았다. 당시 정책이 '실패'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임기를 절반쯤 보낸 2005년 8월25일 노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이날 그가 받은 첫 질문도 부동산 정책에 관련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내성"이라며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내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어렵다며 "역대 정부가 계속해서 실패했다는데, (국민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시장에서 실패한 것은 국가가 정책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줘야 한다"며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극화나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가장 첫 번째 정책이 부동산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처방전은 △시장투명화 △토지소유현황 공개 △부동산대출 관리 △개발이익환수 장치 도입 등이다.

신고가와 실거래가가 다른 '다운계약서'가 일반적이던 시기다. 노무현 정부는 실거래가 신고와 등기부 기재를 의무화했다. 부동산 과세 형평성을 위해서다. 2006년엔 토지소유 현황을 공개했다. 그 결과 상위 1%가 개인소유 토지 57%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을 도입한 것도 노무현 정부 때다. 과도한 부채를 얻어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집권 2년 새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억원 올라 8억원을 넘겼다.

사실상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서울 모든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었다. 국가정책으로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강도높은 조치들을 연달아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그대로다.

2008년 4월 조정지역에서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기로 했다. LTV·DTI 비율도 낮춰 대출을 조였다. 지난해 10월24일엔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내놨다. 새로운 규제 지표들이 나왔다. 신(新)DTI와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RTI(임대업이자상환비율), LTI(소득대비대출비율) 등이다.

노무현 정부는 보유세 카드를 꺼내면서 역풍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부동산 광풍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밖에도 참여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 언론관계법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을 4대 개혁입법 과제로 정하고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다수 여당과 기득권의 저항으로 성과를 얻진 못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4대 개혁입법의 성과는 미미하다. 대부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과거사법 제개정 촉구 움직임만 감지될 뿐이다.

지난해 9월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10주기]국익 위한 '실용주의'…2차 북핵위기→남북정상회담
[the300]대북 포용·대미 실용, 2007년 남북정상회담 성사...이라크 파병·한미 FTA 정면돌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이념'보다 '국익'을 앞세웠던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외교' 정책이다.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당시 한반도 외교·안보 환경은 '제2차 북핵 위기'로 먹구름이 가득 했다.

2002년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게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전쟁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취임한 조지.W. 부시였다. 부시 행정부엔 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이끌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슈퍼 매파들이 가득했다.

군사력 등 하드파워(hard power)를 동원해야 한다는 '전쟁 불사론'도 들끓었다. '북핵 문제' 해결이 막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을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 되면 된다"고 한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3대 국정목표의 하나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설정하고 △균형적 실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신뢰와 포용의 대북정책을 골자로 한 평화번영정책을 들머리에 앞세웠다.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최대 국익인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성취하고 남북 공동번영으로 동북아 시대를 선도하자는 구상이었다.

참여정부 실용주의 외교 노선의 극명한 사례는 2003년 이라크전 파병 결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기반이자 집토끼인 진보개혁 세력의 반대에도 국익을 위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당시 상황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결정이 이라크 파병이었다. 어렵고 고통스런 결정이었지만 파병을 계기로 북핵 문제는 대통령이 바라던 대로 갔다"고 썼다. 대미 실용주의와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재임 기간 카운터파트였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3일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 부시 전 대통령이 추도식 참석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외교가에선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실용주의 외교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노무현 10주기]유시민·김경수…'잠룡'이 된 노무현 사람들
[the300]폐족에서 부활해 집권 성공한 '친노'…노무현 정신·가치 계승 활발, '포스트 노무현'에 관심 집중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10년. '노무현의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따로 또 같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 왔고, 그 정신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가 한결같지는 않지만 2019년 현 시점에서 그들은 분명 국민들로부터 새 '기회'를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기회를 받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드러내 놓고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으나 좌절됐던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 성공한 대통령이 돼 퇴임 후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개혁정책을 펼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 친노 좌장으로 노무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지내며 노 전 대통령의 사후를 지켜온 이 대표는 최근 한 추모문화재에서 "새로운 노무현을 찾아나가자. 노무현 정신을 살려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역사를 전진시키자"고 외쳤다.

'친노(친노무현)'는 한때 '폐족'으로까지 불렸지만 결국 부활에 성공했다. 김종민, 박남춘, 박재호, 전재수, 전해철, 최인호 등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들은 현재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거 활약 중이다. 김영배, 민형배, 백원우, 송인배, 윤건영 등은 10여 년 후 문 대통령을 보좌하며 청와대에서 다시 일했다.

노무현의 사람들 중 문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대표 정치인이 누가될지도 관심이다. '잠룡'으로 꼽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부침도 겪는다. 노 전 대통령의 '동업자'로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한때 강력한 대선주자였지만 성추문에 휩싸이며 정치생명이 사실상 끊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20대 총선 경남 김해을 당선과 경남 최초의 민주당 지사 등 마치 노 전 대통령을 닮은 정치적 성장을 이뤘다. 안 지사 이후 친노 진영의 유력 차기주자로 부상했지만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얽히며 1심에서 유죄를 받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보석 상태인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추모 기간을 맞았지만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해에는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커다란 행운이었다", "진실은 힘이 세고 강하다는 노 전 대통령 말씀이 힘이 된다"고 했다. 드루킹 재판 과정에서도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노 전 대통령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늘 처신에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겨우 두세번 만난 사람과 불법을 공모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친노 지지자들은 물론 정치권 안팎에서 현재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인물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를 자임했던 만큼 지난 10년 노무현 정신 계승 활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토론의 달인' 이미지 등 노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은 유 이사장은 최근 유튜브 프로그램 '알릴레오'·'고칠레오'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던 가치를 전하고,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강력한 부인 의사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선 출마 질문이 잇따른다. 최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의 토크콘서트에서 유 이사장은 "원래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며 또 다시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과거보다 누그러진 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의 주변에서도 "남이 깎아달라는 것", "벼슬(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으면 그에 걸맞은 헌신을 해야 한다"는 등 '포스트 노무현'으로 유 이사장을 '호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김어준씨의 사회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노무현재단은 올해 10주기 추모행사 주제를 '새로운 노무현'으로 정하고 애도와 추모를 뛰어넘어 깨어있는 시민들이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갖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원년으로 삼자고 밝혔다./사진=뉴스1


[노무현 10주기]양정철·김어준 '킹메이커의 구상'
[the300]정치인과 정치세력화 '역할 분담'…진보진영 '정권 연장의 꿈'

"문재인 실장님을 보면 노 대통령이 생각나서요."

청와대를 떠나온 지 2년. 교수이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으로 살던 양정철이 어느날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 가을이다. 양정철은 '그분 대해 갖고 있는 빚, 그 분이 주고 가신 숙제를 하나씩 해 나간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며 블로그의 시작을 알렸다. 스스로에게 '뉴스 셰프'라는 별명을 지어준 뒤 참여정부 인사들을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터뷰가 바로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직전 양정철은 문 이사장을 만나 직접 정치 참여 의사를 물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언론보좌관이었던 그가 문재인 곁에 서서 다시금 '킹 메이킹'을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지점이다.

양정철은 문 이사장에게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난감한 요청을 받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텐데 여전히 같은 원칙을 갖고 계신건지" 물었고, 문 이사장은 "네"라고 단답형으로 답했다.

짧은 대답에 '좀 민망했다'던 양정철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대선후보로 나오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라고.

문 이사장은 "많기야 하겠어요? 음…. 그렇게 현실성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며 신중하고 완곡하게 답했다.

애둘러 회피하는 답이 올 때 마다 양정철은 아내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 학창시절 취미, 특전사 시절 추억 등을 물어보다가도 긴장감을 낮춘 뒤 다시금 정치 화두를 툭툭 던졌다. "선거에서 민주진영전체의 승리를 위해선 어떻게든 역할을 하셔야 한다는 절박한 요청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실 것 같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힘을 뭉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메시지로 문 이사장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그리고 7년 뒤 장미대선에서 문재인 이사장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 과정에 양정철이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격 저서인 '운명'의 집필을 돕고, 18대 대선 낙선 후 떠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 했다. 2017년 문 대통령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기획한 것도 양정철로 알려졌다.

양정철이 '정치인' 문재인의 정치적 행보를 지켰다면 김어준은 '정치 팬덤'의 결집을 이끌었다.

2011년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꼼수다' 2014년 '김어준의 KFC', '김어준의 파파이스', 2016년 김어준의 뉴스공장(TBS) 등으로 끊임없이 진보 정치인을 소환했다. 2010년대부터 보급된 스마트폰의 물결은 김어준의 등장에 힘을 보탰다. 팟캐스트와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한 'SNS 정치혁명'이라는 김어준은 자평했다.

또 보수진영의 '친노' 계파 공격이 심화하자 김어준은 "친노는 보스 중심이 아니라 가치와 지향으로 묶여있다"며 강력한 연대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특히 2012년 문재인 후보의 대선 도전을 공개 지지하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친노의 부활이 아니다"며 새로운 의미 부여에 성공했다.

이제 두 사람의 시선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 향한다.

지난 18일 광화문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 새로운 노무현' 토크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김어준은 무대 올라선 유시민 이사장에게 "본인이 나은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은가"라며 자연스레 대권 경쟁구도를 언급했다. 현재 민주연구원을 맡고 있는 양정철 원장도 "47세 장관이면 소년급제 한 것"이라며 "벼슬을 했으면 그에 걸맞은 헌신을 해야"한다며 정치 참여를 종용했다.

유 이사장이 "원래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고 우회적으로 답하자 김어준은 "오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유 이사장의 ‘내 머리는 내가 못 깎는다’는 것”이라며 주변의 종용이 더 필요하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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