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선거법 개정, 여야 합의로만 처리?

[the300]"합의 관행은 정치 경험 누적의 산물"… 합의안 못내 표결 처리한 사례도 있어

이의진 인턴기자 l 2019.06.13 07:30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김세연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19.6.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처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6월 말이 시한인 정치개혁특별위원의 활동 기한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그 전까지 법안을 심의해 의결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선거법은 ‘게임의 룰’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합의를 통해 처리해 왔고, 그것이 국회의 당연한 기본이자 상식이라고 맞섰다. 


선거법 개정은 여야 합의처리가 원칙인지 팩트체크한다.

 

[검증대상]

 

선거법 개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 왔다는 주장

 

[검증과정]

 

◇‘합의 처리’를 위한 제도, 선거법 개정 특위 여야 동수 구성


상임위원회 법안처리는 대개 위원장이 이의 제기 여부를 묻고 이의가 없다면 의결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위원 다수 표결로 법안 의결이 가능하다. 


국회법 48조에 따라 상임위 위원을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맞춰 구성하고 54조에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하는 조항이 있어 여당이 수적 우세를 누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선거법과 같은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는 다르게 구성된다. 의정사에서 여야는 대부분 이 같은 특위를 여야 동수로 구성해 왔다. 


양당제 하에서 위원회를 여야 동수로 구성할 경우 전원합의가 아니라면 타결이 어렵다. 제도적으로 봐도 여야 합의가 없다면 법안 상정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 경우 교섭단체간 사전 합의가 더욱 중요하다.

    

◇민주화 이후 동수 구성의 전통

 

민주화 이후 첫 정치개혁특위는 14대 국회에서 출범한 정치관계법심의특별위원회로 총 18명의 정원을 9명씩 여야 동수로 구성했다. 당시에도 상임위 및 특위를 의석 비율대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이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동수 구성을 받아들였다. 당시 보도에서는 이 같은 동수 구성을 ‘전통’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으로 평가했다.

 


언론보도에서 ‘특위 여야 동수 관행’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시기는 15대 국회 때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는 13대 국회 불온문서배부사건특위부터 14대 국회 정치관계법심의특위까지 7차례 특위의 선례를 근거로 제도개선 특위를 동수 구성로 구성하는 게 전통이라 주장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특위 구성을 의석 비율대로 할 것을 주장하다 야당 주장을 수용해 동수로 특위를 꾸렸다.

 

이후부터는 선거법 개정 시 특위 동수 구성을 통한 합의 처리가 관행이라는 정치권의 주장이 빈번히 언론보도에 실린다. 실제로 16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논란이었던 1999년에 정치인들이 이 같이 발언한 경우가 많다.

 

민주화 이후 19대 국회까지 정치 관련 특위는 16대 국회에서의 한 차례를 제외하고 여야 동수로 구성됐다. 이에 따라 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한 경우에는 대부분 본회의에서 안건을 통과시켰다.

 

다수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이같은 기억이 누적돼 합의처리가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봤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제도를 운영해온 방식이 바로 관행”이라며 “선거제 합의 관행은 민주화 이후 여야 사이에서 30년 간 민주주의 경험이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정치관계법의 경우 1990년 이후 여야 합의를 존중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 못해 본회의 표결처리 사례도

 

2000년 2월 15대 국회에서는 선거법 개정 여부가 본회의 표결 끝에 결정됐다. 당시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은 기존 특위에서 개정안을 합의했으나 이를 두고 ‘선거법 담합’이라는 여론을 의식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여당에 요구해 재협상에 들어갔다. 세 정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끝내 본회의에 안건이 3건이나 회부됐다.

210회 국회 4차 본회의 회의록(2000년 2월 8일) 중 정의화 전 한나라당 의원 발언


본회의에서만 선거법 처리가 3차례 무산됐다. 결국 회기를 연장해 의원 개개인의 찬반 표결로 각 사안마다 다수 뜻대로 선거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 방식은 전체 276표 중 찬성 151표로 한나라당의 1인1표 전국구제가 관철됐다. 지역구 인구 상·하한선의 경우 찬성 154표로 민주당이 선거구획정위안을 수용해 올렸던 35만~9만명 안이 확정됐다. 결과적으로는 각자가 하나씩 양보한 셈이 됐지만 그 과정은 표결 처리였다. 

 

서 교수는 “합의안을 낸다는 관행이 성문법처럼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행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례도 있고 반증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검증결과]

 

선거법 개정은 여야가 합의처리하려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별위원회를 동수로 구성해 표결 없이 합의가 이뤄질 경우에 선거법을 개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향이 민주화 이후 관행화됐다고 평한다.

 

다만 이 같은 원칙에 맞지 않는 사례도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15대 국회 사례가 그렇다. 여야는 정개특위와 선거구획정위에서 낸 개정안에 합의하지 못했고, 각 정당별 수정안들을 본회의에 회부한 뒤 표결로 가결안들을 묶어 선거법을 개정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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