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행 지장 주면 리콜하라?…법 고쳐야"

[the300](상보)김상훈 의원, '자동차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 개최…리콜 요건 명확화 및 처벌 개선 방안 논의

이건희 기자 l 2019.06.12 17:09
서울 시내의 한 서비스센터에서 정비사들이 차량 정비를 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면 결함?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오길영 신경대 교수, 12일 국회 토론회)

현재 법에 규정된 자동차 '리콜'(결함 시정) 요건을 명확히 하고, 정부의 합리적인 리콜 관리·감독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자동차 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선 현재 자동차관리법에 정해진 리콜 규정들의 모호함,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현실화 어려움 관련 지적이 쏟아졌다. 관련 대안으로 △리콜 요건 명확화 △자발적 리콜 활성화 또는 강제적 리콜 처벌규정 부활 등 논의가 진행됐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자동차 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 기념촬영 모습. /사진=이건희 기자

발제자로 나선 류병운 홍익대 교수는 "현행 자동차관리법 31조에 정해진 리콜 요건 중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는 모호한 규정"이라며 "이로 인해 제작사, 소비자, 관련 부처간 리콜 필요성 판단에 있어 심각한 견해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제작사는 처벌 규정에 대한 부담으로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콜을 시행할 수 있다. 정부는 결함차량에 대한 피해구제를 전적으로 제작사에게 의존할 경우 리콜을 소극적으로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소비자들은 정확한 결함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조치됐는지 알지 못한 채 장기간 위험에 방치될 수 있다.

류 교수는 현행 리콜 처벌 규정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있는 반면, 정부가 내린 강제적 리콜을 제작사가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규정이 없다"며 "이는 법체계의 정합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자동차관리법 개정 과정에서의 오류"라고 말했다.

2011년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기 전 제78조 제1호에는 '자동차 제작사가 국토교통부 장관의 리콜 명령에 위반한 경우'에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법을 고치는 과정에서 자발적 리콜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도록 조항이 바뀌었다. 류 교수는 이 같은 법 개정사항에 대한 국회 논의기록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입법 과정상 실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등 해외처럼 리콜 관련 위법사항을 과징금 부과로 통일하고, 형사처벌은 정부의 시정명령 위반 시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처벌을 우선하는 포퓰리즘적 입법을 지양하고 근본적으로 소비자의 안전을 강화할 제도 개선을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윤제 성균관대 교수를 좌장으로 △오길영 신경대 교수(경실련)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 시민연합 대표 △박수헌 숙명여대 교수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윤진환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장 △김을겸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 등 각계 전문가들의 제도 개선 토론이 진행됐다.

오 교수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준다는 기준의 경우 하위 규정을 찾아봐도 마땅하게 적용할 내용이 없다"며 "현재 법에 있는 '자동차 또는 자동차 부품이 안전기준에 불일치한다'는 내용으로만 법을 시정하면 기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 리콜 관련 개정안 내용으로 제안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의 비현실성도 언급했다. 그는 "BMW 화재 사태 이후 자동차관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넣자는 법안들이 등장했다"며 "그렇게 되면 자동차관리법은 민사소송 영역까지 포함하는 종합법률이 돼 통상적 입법체제에서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소비자 안전을 향상시킬 제작사의 자발적 리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적극적인 자세와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 및 리콜 관련 법 규정 완비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경우 리콜 판단에 대한 제재는 민사(民事)금전벌로 규정하고 형벌 부과는 중상해(重傷害)관련 결함에 대해서 정부에 보고 의무를 위반한 경우로 한정한다"고 소개했다.

임 대표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라는 요건과 '결함 사실을 안 날부터 지체 없이'라는 요건을 구체화해야 한다"며 "결함 요건을 개별 사안에 명확하게 적용해 제작사가 리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상무는 국가기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선 일정기간 이상 모니터링하는 사안에 대해 제작사는 신고의무를 가진다"며 "정부는 이에 따라 종합적인 리콜 여부를 판단·권고하고, 이는 제작사의 늑장 리콜시비 및 정부의 늑장대처 논란을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 간 리콜 관련 정보가 공유되는 현 상황에서 국내 리콜 사안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리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리콜 관련 규정이 전 세계적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리콜제도가 마련되도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속 수렴해 입법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 의원은 현행 자동차관리법의 해석상 모호함을 삭제하고, 자동차 제작자 등이나 부품 제작자 등의 요청에 의한 국토교통부 장관의 결함판정 제도를 신설해 결함을 신속하게 시정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을 지난달 27일 대표발의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