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다운+다운업=평화프로세스 '레벨업'…文 연설 분석

[the300][북유럽 결산]②다운업으로 보완…협상지속 위한 '신뢰구축'

스톡홀름(스웨덴)=최경민 기자 l 2019.06.16 13:04
【스톡홀름(스웨덴)=뉴시스】전신 기자 =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스톡홀름 유르고덴 내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2019.06.15. photo1006@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북핵 메시지는 크게 '오슬로 구상'과 '스톡홀름 제안'으로 나뉜다.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 포럼' 연설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Peace for people)' 개념을 제시했고,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문재인 프로세스'의 '레벨업'을 의미한다. 그동안 '톱다운'으로 진행돼 온 평화 프로세스에 '다운업' 방식을 섞어 협상의 불가역 지점까지 단숨에 나아가겠다는 의미다. 우선 김 위원장이 응답해 '포스트 문재인 프로세스'가 가동된다면 '국민을 위한 평화' 역시 추진될 게 유력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향후 추진되는 외교 및 대북정책은 오슬로 구상의 연장선에 위치할 것"이라고 했다.

오슬로 구상의 '국민을 위한 평화'는 다운업 방식의 평화 프로세스다.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평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평화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협상판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 빠르면 6월 중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접경위원회'의 설치가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 평화'의 방법론으로 과거 동독과 서독 사이에 있었던 접경위원회의 예시를 들었기 때문이다. 접경위가 구성된다면 병충해, 가축전염병, 어민 조업권 등 민감한 문제를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다.

'스톡홀름 제안'은 톱다운의 업그레이드를 의미한다. '하노이 노딜'까지 김 위원장이 결심하지 못했던 '영변 플러스 알파'를 촉구했다. 비핵화 로드맵과 같은 확실한 조치를 미국과 약속하지 않고서는 체제보장과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톱다운이지만 미국과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도 읽힌다. 김 위원장에게 '플러스 알파'를 들고와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어주는 흐름 속에서 실리를 택하는 게 현실적이란 의미다.

톱다운이 갖는 리스크도 보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실무협상을 토대로 양 정상 간 회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실무회담에서 작성된 합의문에 '빈 칸'이 있을 경우 '노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다가올 국면에서는 지도자들의 확실한 의지를 바탕으로 실무협상에서 합의문을 완성시킨 후 정상회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두 톱다운과 다운업을 섞어 남북미 간의 상호 의존성을 극대화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한 취지다.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이 정상들 간 협상에서의 역진을 막고, 정상들 간의 명확한 협상 의지가 국민들의 평화 의식에 영향을 주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상호의존 속에 마련된 신뢰는 대화로 이어진다. 문 대통령은 '스톡홀름 제안'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라며 "신뢰를 통해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통해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비핵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안정적인 대화 기조 속에 협상을 이어가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최종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핀란드 원로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헬싱키 프로세스는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한 신뢰구축의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스톡홀름에서도 "헤어져서 대립했던 70년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이어붙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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