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미국 지렛대' 카드로 日 압박 구상…외교전 '올인'

[the300]김현종 '깜짝 방미'…韓 반도체 타격 시 美 제조업도 영향 설명할듯

최경민 기자 l 2019.07.11 16:36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 2019.07.02. photo1006@newsis.com

청와대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와 관련한 외교전에 '올인'한다. 한일 양자협의에 앞서 미국의 중재 촉구 등 국제 여론전에 드라이브를 걸며 일본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2차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다. 사전에 예고된 바 없는 '깜짝 방미' 였다. 일본의 수출 규제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극비리에 미국을 찾은 것이다.

김 차장은 워싱턴D.C. 덜레스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백악관, 상하원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만나 한미 간 이슈를 논의할 게 많아서 출장을 왔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미국의 중재 요청도 논의 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 이슈도 당연히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협상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차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체결 및 개정협상을 모두 책임졌다. WTO(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김 차장이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직접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러 백악관을 찾았다. 통상문제 협상의 1인자로 손꼽히는 김 차장이 워싱턴 D.C.를 찾았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일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양자협상은 여전히 막혀있다. 우리는 꾸준히 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명확한 응답을 주지 않는 상황이다. 12일 한일 과장급 실무협의,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 등 일련의 이벤트들이 끝난 이후에나 양자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일본에 협상안을 제시한 바가 아직 없다"며 "특사를 보낼 타이밍도 아니다"고 밝혔다.

일본에 '맞대응'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다. 전날 기업인들도 "원만하게 외교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고, 문 대통령도 이에 공감했다. 업계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한일 무역전쟁 구도로 진행될 경우, 경제계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일본의 보복을 극복할 수 있는 단기적 대책이 뚜렷하게 제시된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건과 관련한 '장기전'을 천명했다. 수출 다변화 및 소재 생산 국산화를 기반으로 한 '탈 일본'을 내세웠지만, 이는 단기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국내 산업구조 개조에 앞서 일단 한일 문제를 봉합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단기 대책이 '미국의 중재'다. 김 차장은 미국에서 일본의 보복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 반도체의 타격은 미국의 제조업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중재를 요청할 게 유력하다. 미국의 중재를 약속받는다면,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참의원 선거 후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협상판에 나설 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이 중재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미가 공조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일본이 후속 제재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일본의 후속 보복을 막는 것이다. 당장 오는 18일까지 강제징용과 관련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우리가 받지 않으면 후속 제재가 나올 수 있다는 평가다.

미국의 중재에만 기대지 않고, 전방위적인 외교전에 나선다. 우리 정부는 오는 23일부터 예정된 WTO 일반 이사회에서도 일본 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한다. 전세계적인 여론 몰이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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