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71살…그때 그시절 그헌법

[the300][런치리포트-나는 대한민국 헌법이다]②일흔 넘은 헌법, 변천사

조준영 기자 l 2019.07.16 19:13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박근혜 정부말 촛불시위 당시 광화문거리에 울려퍼진 일명 '헌법 제1조 노래' 가사다. 모든 권력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지키라는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주문이다.

헌법은 법체계상 최상위에 위치한다. 헌법의 규정과 정신에 따라 모든 법이 존재한다. 삼권분립, 법치주의 등 지금은 당연한 가치와 제도·기구들이 헌법에 따라 시작됐고 발전했다.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을 탄핵한 것도 헌법에 따른 결과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근거로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헌법재판소가 탄핵했다.

그렇다고 역사상 헌법 '개정'이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지는 않았다. 1948년 제헌헌법 이후 헌법개정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와 궤를 같이한 헌법개정사=한국 근현대사의 엄혹한 시기도, 민주화의 시작도 헌법이 바뀌며 이뤄졌다.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총 9차례 헌법이 개정됐다. 특히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개정된 헌법은 지금까지 32년동안 유지되고 있다.

헌법 개정사를 살펴보면 권력구조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통령의 임기를 몇년으로 하느냐, 내각제냐 대통령제냐, 직선제냐 간선제냐 등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의회권력을 어떻게 선출하는지가 핵심이다.

헌법은 1조에 앞서 전문을 통해 헌법의 지도이념과 기본원리를 규정한다. 특히 전문 초반부에 특정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하며 헌법이 어떤 정신을 계승하는지 나타낸다. 제헌헌법은 1919년 기미 삼일운동을 통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힌다. 항일독립운동의 정통성과 당시 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서훈도 이러한 헌법정신에서 시작한다.

1962년 개정된 5차헌법에 '4·19의거'와 '5·16혁명'이 추가됐지만 1980년 개정된 8차헌법에 이 조항은 삭제됐다. 당시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 입장에서 헌법에 '5·16혁명'을 명시한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지금의 헌법인 9차헌법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구체적인 문구가 삽입됐다. 대한민국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하냐는 '건국절 논란'도 이 전문에서 시작한다. 헌법문구에 대한 해석차이가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될만큼 헌법의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는 적잖다.

◇그때 그시절 헌법, '혼인의 순결'? '국영화 원칙'?=제헌헌법을 살펴보면 2019년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생경한 조항들도 눈에 띈다. 제20조는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 등이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혼인의 순결'은 일부일처제, 정조 등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헌법정신에 따라 간통죄도 탄생했다.

하지만 국가가 사인간의 관계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 또한 함께 제기돼왔다. 해당 조항은 7차개헌 당시까지 유지되다 1980년 8차개헌 때 순결조항이 삭제됐고 9차개헌에 혼인과 가족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문구로 조정됐다.

제헌헌법이 지향한 경제가 사회주의식에 가까웠던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85·87조에 따르면 광물, 지하자원 등 자연력은 국유로 하고 운수·통신·금융·보험·전기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했다. 또 대외무역을 국가의 통제하에 둘 정도로 국가의 시장통제가 기본적인 경제방향이었다. 당시 헌법에서 명시된 분야들이 상당수 민영화된 지금과 차이가 크다.

혼인순결을 강조할만큼 보수색채가 강한 제헌헌법이 진보적인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84조는 모든 국민들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 실현을 경제질서로 삼았다. 인권과 같은 개인의 권리만큼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을 사회정의로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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