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팔'(望八) 맞는 헌법, 21대 국회선 새 옷 입을까

[the300][런치리포트-나는 대한민국 헌법이다]①나를 소환한 박근혜, 이를 외면한 20대 국회

김민우 기자 l 2019.07.16 19:10

편집자주 대한민국 헌법은 올해 망팔(望八)을 맞는다.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헌법은 늘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역사의 상당시간을 권력자들의 집권연장 수단으로 악용되는 고통을 겪었지만 1987년 마침내 국민의 힘으로 새 헌법을 탄생시켰다. 어느덧 1987년 헌법의 나이도 서른을 훌쩍넘겼다. 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변화가 일어나면서 어느 때보다도 헌법개정에 대한 요구가 높은 시점이다. 제71회 제헌절을 맞아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와 일련의 개헌논의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되짚어 봤다.



최순실국정 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내게 쏠렸다. 국민들은 내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바뀌어야 국민들의 삶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19대 대선에 나선 대선후보들은 모두 나를 바꾸는 것을 공약으로 삼았다. 그러나 정치 테이블에 내가 오른 순간 나는 정쟁의 수단이자 권력투쟁의 도구로만 쓰였다. 나를 바꿔야한다는 요구가 가장 높은 시점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바꾸기 가장 어려운 국면을 맞았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이다. 1948년 7월17일 태어나 올해로 만 71세다. 나라가 몸이라면 나는 뼈대다. 몸이 아무리 유연해져도 관절이 거꾸로 접히는 일은 없다. 상황에 따라 법은 고치더라도 헌법이 뼈대로 몸을 바친다. 그러나 몸이 커질 때 뼈도 자란다. 이 작업이 바로 개헌이다. 개헌은 민주주의 통치 체제를 바꾸는 작업이다. 시대정신과 권력구조, 기본권 등 나라의 근간을 정비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성장하는 동안 모두 9번 개정됐다. 방향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두번이나 내가 수정됐다. 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해 '내각제'를 골자로 개정되기도 했지만 나는 곧 군화발에 짓밟혔다. 

이후 나는 또 다시 군사정부의 정권연장 수단으로 이용됐다. 1987년 나는 마침내 국민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민주화'라는 당시 시대정신을 담아 '직선제'로 바꿨다. 독재정권의 재발을 막기위해 권력구조는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택했다.

#민주화 그 후...다시 32년
 
그후로 다시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몸은 또 성장했다. 몸은 변했는데 뼈대는 그대로라서 나를 바꿔야한다는 요구가 적잖다. 민주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넘어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분출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권력구조도 수명이 다했다는 평가다. 

단순히 독재를 막기위해 도입한 5년 단임제는 '조기 레임덕'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야로 나뉜 정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정치 지형을 만들었다.

정치권도 진작부터 나를 바꿔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래서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2008년 9월 18대 국회 김형오 의장은 의장 자문기구로 '헌법연구자문회의'를 발족했고 2014년 19대 국회 강창희 의장은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발족해 헌법개정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개헌은 정치권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국민의 염원과 멀어졌다. 정치권은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쏟았다. 개헌 주장은 '재집권 전략'으로 치부됐고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된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나를 다시 부른 박근혜

나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 준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30년 만에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퇴진시킨 '혁명'의 경험은 곧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뼈대인 나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모든 대선 후보들이 이 열망을 끌어안았다. 후보마다 개헌을 주장했고 각자의 개헌안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대선후보들은 '대선 전' 개헌을 주장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은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당선 후 약 10개월 만에 개헌안을 발의했다.

4년 연임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되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였다.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 감사원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대폭 축소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했다. 선거구제는 비례성을 강화하고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사항도 담았다.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불리는 검찰의 영장청구권도 헌법에서 삭제했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감시하고 심판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도 담았다.

그러나 국회 문턱은 높았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여당'과 청와대가 개헌안을 내놓으면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먼저 개헌안을 내놓자 한국당은 국회가 개헌안을 논의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놓는 것은 국민개헌을 걷어차는 폭압이자 일방통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일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외면한 20대 국회…21대 국회는?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정부개헌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부결됐다. 본회의장에는 더불어민주당 112명, 정의당 6명, 민주평화당 3명, 바른미래당 1명, 무소속 3명 등 총 125명만 참석했고 투표는 이중 114명만 참여했다. 192명의 의결정족수에 한참 못미쳤다.

야당은 이날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대통령 개헌안을 밀어붙일게 아니라 국회차원의 개헌안을 발의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는 개헌논의를 이어가지 않았다. 나를 바꾸는 일을 또 하나의 정쟁수단으로만 이용했다는 얘기다.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몸집이 커졌고 달라졌다. 경제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 민주주의는 평화적 정권교체, 부패한 권력에 대한 심판 등을 거치며 성숙했다. 국제사회에서도 국격의 상승이 체감된다. 이젠 커진 몸을 받칠 수 있도록 더 튼튼한 뼈대로 바꿔야 할 시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 소수자의 인권, 양극화 사회, 인간과 함께 해온 동물 그리고 인공지능….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하고 만들어야 할 뼈대가 적잖다. 정답은 없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권력 구조 개편을 넘어서 민주주의, 인간의 기본권, 생존권, 환경권 등을 새 시대에 맞게 논의해 보자는 국민의 염원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아직 나를 바꾸기위한 동력은 남았다. 21대 총선이다. 총선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이용될 것이다. 국민들이 나를 바꾸길 원한다는 것을 알기에 저마다 총선에서 공약할 가능성이 크다. 새 국회가 구성되면 다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도 높다. 나는 과연 내년에 새옷을 입을 수 있을까.71번째 생일을 맞아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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