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국회 인사청문회…'할 의무와 받을 권리?'

[the300]정쟁 심해 청문회 무산된 사례도…"정책 검증 중심 청문회 모색해야"

조철희 기자 l 2019.08.23 04:00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의혹제기가 연일 확산되는 가운데 조 후보자를 검증할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부처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준 대상이 아니더라도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실시해야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은 '보이콧'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의혹이 있다면 있는대로 청문회에서 진위를 검증하자는 입장이다. 조 후보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에 대해 국회 청문회에서 자세히 해명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한국당은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을 여당과 협의하기보다 조 후보자의 자진사퇴나 청와대의 지명철회를 요구하며 강력한 공세를 펴고 있다.

◇인사 청문할 의무, 받을 권리?=22일 국회에 따르면 조 후보자 청문회는 일정 논의부터 여야가 평행선을 달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 14일. 조 후보자를 검증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요청안이 회부된 것은 이틀 뒤인 16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요청안이 상임위에 회부된 날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한다는 국회법 제9조 1항 규정을 근거로 늦어도 오는 30일(31일은 토요일)까지는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며 야당에 청문회 일정 확정과 개최를 연일 촉구했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국회법 제6조 2항에서 요청안 제출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다음달 2일까지 일정에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부득이하면'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국회법 제6조에 따라 문 대통령이 다시 10일 이내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달 2일이 지나 청문회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제기한 적이 있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보이콧 가능성도 시사했다. 황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후보자는 청문회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며 "그동안 드러난 의혹들과 고소고발에 대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부터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부터 열자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은 청문회 하루만 넘기면 임명을 강행하겠다고 하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라며 "분노한 민심을 직시해 즉각 조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민들께 직접 사죄하라"고 문 대통령에 요구했다.

반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30일까지가 인사청문회의 사실상 법적 시한"이라며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사법개혁 의지와 정책비전, 실현 가능성을 진단하고 국민들의 판단을 기다려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당은 더 이상 의혹 부풀리기 중단하고 하루속히 청문회 일정을 확정해 주길 바란다"며 "의혹이 있다면 마땅히 청문회장에서 후보자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진실을 검증하면 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청문회가 빨리 열리길 바라는 것은 여당 뿐만 아니라 조 후보자가 더 절실해 보인다. 조 후보자는 전날 서울 종로구 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며 "충분히 밝힐 것이고 소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지 않는다면 조 후보자의 해명 계획도 차질을 빚거나 무산될 수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동시에 국회는 일정대로 청문회를 열어 언론에서 제기된 부분들을 더 명확히 규명하고, 조 후보자도 진위를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황 대표도 조 후보자에게 '뭐가 가짜 뉴스라는 것인지 말하라.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했는데 청문회에서 그 답을 들으면 된다"며 "국회가 규정에 따라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의무가 있다면 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쟁으로 인사청문회 의무 버렸던 국회=국회 인사청문제도는 2000년 시행됐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자의적 임명권을 견제하고 자격을 갖춘 인사들이 고위직에 임명돼 효과적인 국정운영을 가능케 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인사청문제도는 그동안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해내기도 했지만 후보자의 전문성을 검증하기보다 도덕성 검증에 치중돼 여야간 정쟁의 수단에 그쳤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시행 역사가 짧고 제도 개선도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취지가 잘 발휘될 수 있다는 기대도 꺼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전에 후보자가 낙마하거나 인사청문요청이 철회된 적은 있지만 청문회 자체가 무산된 적은 별로 없다. 19대 국회 이순진 합동참모의장, 18대 국회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국회가 한해 중에 가장 바쁜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열렸다.

무산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가 극심한 정쟁을 하느라 의무를 방기한 적이 있다. 가장 최근은 올해 초 일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증인 채택 갈등에 무산됐다. 결국 조 후보자는 청문회 없이 임명됐다.

과거 2008년 7월엔 여야 갈등으로 원 구성이 불발되자 3명의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갖지 못했다. 2006년에는 사학법을 두고 여야 갈등이 극에 달해 당시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무산됐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운영 상에 문제점이 있지만 취지를 살리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고위공직자의 자질을 전국민적 차원에서 인식할 수 있고, 반대로 임명권자에게도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높은 눈높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사청문제도가 고위공직자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 검증이라는 애초의 취지에 부합되게 운영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정파적인 대립을 지양하고, 대통령의 인사권 견제 차원에서 인사청문제도를 운영하고자 하는 국회 차원의 노력이 경주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검증 중점 두고 사생활은 비공개로"=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방법론적 차이가 크지만 정치권은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개선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손질에 더 적극적인 쪽은 야당으로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자 범위 확대 △국회의 자료제출요구권 강화 △후보자 허위진술 처벌 강화를 중점 요구했다. 반면 여당은 후보자 사생활 보호 등에 관심을 뒀다. 최근 들어서는 여야 양쪽에서 동시에 정책 검증 중심의 제도 개선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까지 20대 국회 계류 중인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총 50건에 달한다. 2016년 5월 개원했으니 매달 약 2건씩 발의된 셈이다.

계류안 상에서 청문회 대상 공직자 확대는 △대통령 비서실장 △러시아·미국·일본·중국 등 4강 전권대사 △특임공관장 △원자력안전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등까지 거론됐다.

자료제출 범위는 △10년간 금융거래내역·신용정보사항·국민연금납부내역·의료기관진료내역 의무첨부 △비밀이 보장된 금융거래내역 △정치자금 익명정보 가공 자료 △청와대의 공직자 추천 경로 자료 등으로 확대가 모색됐다.

정책 검증 중심의 인사청문회와 후보자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인사청문회를 능력검증청문회와 윤리검증청문회로 이원화 하고, 윤리검증청문회에서 사생활 관련 내용은 비공개 진행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됐다. 정책 검증 중심 인사청문회를 위해 후보자 인사자문위원회를 국회 내에 설치하고 자문 결과를 공개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계류 중이다.

장관직은 상임위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임명 강행이 가능해 국회 인사청문 결과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인사청문회 무용론'과 함께 청문회의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각료에 대한 인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엄격한 인사검증이 전제된다면 대통령 임명권을 존중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후보자를 검증한 내용을 국회에 공유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관련 개정안을 냈다. 김도읍·이종배 한국당 의원은 임명권자 등이 공직후보자 사전검증 후에 그 결과를 인사청문 요청사유서와 함께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증빙서류도 포함해 제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인사청문제도에 대한 개선 의지가 강하다. 문 의장은 최근 여야 5당 대표와 만나 "국회의 뜻을 대통령이 수용하게 하려면 국회가 인사청문회법을 고치는 등 전반적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먼저 청와대 등에서 후보자의 도덕성을 촘촘히 걸러내고, 국회로 넘어오면 정책 청문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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