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만나는 아웅산 수지, '학살' 묵인한 '자유의 새'

[the300]오늘 韓-미얀마 정상회담…로힝야족 사태 언급될까

방콕(태국)=최경민 기자 l 2019.09.03 05:30
지난 2012년 6월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양심대사상을 수상한 록밴드 U2 리더 보노 © AFP=뉴스1

"창이 열린 새장에서 노래하는 새. 오직 자유를 위해서만 날아갈 그 새."(A singing bird in an open cage, who will only fly, only fly for freedom)

세계적인 록밴드 U2가 2000년 발표한 노래 '워크 온(walk on)'의 한 구절이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 아웅산 수지 여사가 가택 연금 상태에 있자 그를 위해 헌정한 노래다.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까지 수상했다.

"구역질이 난다". 2017년 U2의 보컬 보노(Bono)는 수지 여사에게 이같이 독설을 날리며 사실상 'walk on'의 헌정을 취소했다. 시간이 흘러 수지 여사는 미얀마의 실권자인 국가고문이 됐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의 수지 여사와, 2017년의 수지 고문은 그렇게 달랐다.

한 때 민주화 운동으로 노벨평화상(1991년)까지 수상했던 '자유의 새'는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에는 다른 사람이 됐다. 군부독재가 종식됐지만, 수지 고문의 권위주의 통치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언론탄압과 같은 비민주적 통치 수단도 동원됐다. 뉴욕타임스는 수지 고문을 두고 "독재자들의 성향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정타는 로힝야족 사태였다. 2016년 미얀마 라카인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반군단체가 경찰 초소 등을 습격했다. 이후 미얀마군이 반격에 나섰고, 로힝야족 전체에 대한 무차별 폭력, 강간, 방화가 발생했다. 

이후 유혈사태 국면으로 확장되며 지금까지 70만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등으로 피난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민주화 운동가 출신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의 실권자인 수지 고문이 이같은 '인종청소'에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에 전세계가 충격받았다. 국제적인 비판 속에 우리나라의 5·18 기념재단도 수지 고문에게 수여했던 ‘광주 인권상’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을 떠나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 도착한 후 수지 고문과 정상회담 및 양해각서(MOU) 서명식, 공동언론발표, 국빈만찬 등의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양 정상 모두 젊었을 때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었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인종청소를 눈 감았던 권위주의 성향의 수지 고문과 민주정부의 수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로힝야족 문제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거론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얀마의) 라카인 문제는 국내에서 관심이 높다"며 "수지 고문과 정상회담 때 그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입장은 한결 같다"며 "2017년 라카인 사태 이후 대규모 난민 문제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피난민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환경이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수지 고문에게 로힝야족 문제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와 대규모 난민 발생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한국은 미얀마 정부가 지난 7월 설립한 '독립적 사실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하며, 난민들의 안전하고 조속한 귀환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4일 오전 싱가포르 선텍(SUNTE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위해 자리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웅산 수찌 미얀마 국가고문, 문 대통령, 리 센룽 싱가포르 총리. 2018.11.14.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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