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남긴 것]'법잘알' 서바이벌 시대

[the300]③법잘알…정치보다 '법과 절차' 시비에 의존하는 사회

백지수 기자 l 2019.09.10 18:00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 송기헌(더불어민주당)·김도읍(한국당) 법사위 간사…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정치인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주인공’ 조 장관은 우리나라 최고 학부라는 서울대의 법대 교수였다. 그야말로 ‘법잘알(법을 잘 아는 사람)’ 전성시대다.

‘법잘알’이 전면에 나서면서 국회에서 ‘정치’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고소·고발이 채웠다. 타협의 미학은 사라지고 법과 절차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합법인지 위법인지 시비 가리기가 우선이 됐다.

지난 9일 문 대통령의 발언은 ‘법잘알’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이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상 절차에 따라 일단 인사청문회를 치른 것은 맞다. 청문 과정에 제기된 각종 의혹도 검찰 수사가 이제 시작돼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형사상 위법 여부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도 맞다. 하지만 법과 절차상 임명 요건이 성립하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에게 장관 적격 사유를 설득하긴 어렵다. 

임명 과정 여당과 야당의 행보도 ‘법잘알’의 논리가 지배했다. 여당의 방어전에 등장한 논리는 문 대통령의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 “조 장관에게 당장 위법한 부분이 없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청문회 개최 논의 과정도 야당과의 ‘협상’ 대신 국회법 절차에 따른 자기 방어가 이어졌다.

야당의 공세에는 고소·고발이 빠짐 없이 등장했다. 조 장관 내정부터 임명까지 한 달 사이 한국당에서만 10여건의 고발이 이뤄졌다. ‘조국’이라는 인물 검증 잣대가 불법을 저질렀는지에 집중됐다. 국무위원 인사 검증이 국회의 공이 아닌 검찰의 공으로 넘어가게 된 이유다.

법잘알들의 대립 과정에 득 본 것은 검찰이다. 검찰은 조 장관 청문회 직전 압수수색과 청문회 직후 조 장관 부인 기소 결정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국민은 쪼개졌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여당은 정치가 들어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고 타협이 사라진 자리에 야당은 법률을 이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며 “입법부뿐 아니라 사회 자체가 극단적으로 쪼개지며 상식 대신 법만 통하는 사회가 된다는 문제를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개혁 과정에서는 도덕도 능력”이라며 “‘불법이 없으면 괜찮다’는 선례로는 오히려 개혁에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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