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문재인 정부는 '새 시대의 첫차' 대신 '조국대군'을 택했다

[the300]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 항상 경험해 왔던 나라.

최경민 기자 l 2019.09.12 11:05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을 기다리고 있다. 2019.09.09. photo1006@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전국을 돌며 "새 시대의 첫 차가 되겠다"고 말했다. 대선 승리의 절실함으로 무장했던 그가 이따금씩 쇳소리를 내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외쳤던 것을 기억한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운 그는 '촛불 대통령'이 됐다.

2019년 9월. '새 시대의 첫 차'는 출발을 했나. 고등학교 시절에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려놓은 딸의 아버지. 장학금, 다양한 인턴 경험 등 특혜를 챙긴 딸의 아버지. 가장 결정적으로, 그러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연못의 가재·붕어·개구리'로 살라고 조언해온 조국을 법무부(Ministry of Justice) 장관직에 앉혔다.

그냥 '항상 경험해 왔던 나라'다. 표리부동한 꼰대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가재·붕어·개구리에게 질서 준수를 설교하는 나라. 

문 대통령과 소위 386 지식인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은 "위법은 없다", "본인의 잘못은 없다"고 하지만 위법이 있으면 교도소로 가야 한다. 범법 여부는 경찰이나 검찰이 따질 일이다. 국민들은 '새 시대'에 걸맞는 장관의 자격을 물어왔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촛불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가장 잘 실현할 인물이라는 확신이 국민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밝힌 그대로, 대선 당시 시대정신은 '상식과 정의'였다. 최순실 게이트로 쑥대밭이 된 대한민국을 '나라답게 만들어줄' 공정한 지도자를 국민은 원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가 현재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민들, 특히 2030 젊은 세대들은 이 메시지 앞에 "내 자식은 제외하고"라는 말이 빠진 듯 하다고 느끼고 있다.

법무부 장관 한 명을 두고 정부 자체를 폄하하는 게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조 장관은 그냥 단순한 장관이 아니라 이 정권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다. 그가 곤경에 처하자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여당 의원들부터 386 지식인들까지 총출동해 방패를 들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지향점의 차이도 확인됐다. 공정과 검찰개혁 중 검찰개혁을 택하면서다. 물론 두 가치 모두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묵은 숙제와 같다. 하지만 이 두 중요한 가치 중 택일하게끔 만든 상황은 문 대통령과 조국 장관 본인들이 자초했다. 

검찰개혁이 '조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의지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아웃라인은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으로 이미 다 나와있다. 힌트는 문 대통령이 줬다. "조국 장관에게 그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을 완수한 장관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조국 장관에 주려한 것이다. 그의 임명식 라이브를 두고 "세자 책봉식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대정신인 '공정'을 버린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새 시대의 첫 차'가 될 자격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정책, 검찰개혁, 차기권력창출 등에서 성과를 얻어 '성공한 정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새 시대'에 걸맞는 정부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구 시대의 마지막 차'가 될 수 있다면 그나마 행운일 것이다.

혹여나 '공정'이라는 가치가 실현될 '새 시대의 첫 차'가 올 때 문재인 정부와 핵심세력인 386 지식인들이 무임승차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자신들이 결정한 대로 구 시대에 남아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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