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무소속 이언주의 삭발, 한국당은 왜 못했나

[the300]

박종진 기자 l 2019.09.10 20:26

편집자주 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삭발식을 단행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조국 장관'이 임명된 다음날 국회.

10일 여의도의 주인공은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었다. '최후통첩' '민란' 등 거센 말을 쏟아냈던 자유한국당 지도부도, '국민 저항권'을 언급한 바른미래당 의원도 아니었다.

이 의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타살됐다"고 선언한 뒤 삭발했다. 야권 국회의원 중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강행에 항의하면서 무언가를 희생한 사실상 첫 사례다. 국회 안팎에서 "이념을 떠나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는 의원은 이언주 한 사람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여론의 관심은 단숨에 이 의원에게 쏠렸다. 한 노회한 정치인은 즉각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머리는 자란다"며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로 삭발을 꼽기도 했다.

비아냥대로 머리는 자란다. 자라는 머리조차 깎지 못하는 의원들이 문제다. 대한민국이 금방 망할 것처럼, 법치주의가 무너졌다고, 격분을 토하던 야당 의원들이지만 정작 행동에서는 결기가 묻어나지 않는다.

물론 삭발, 단식만 의지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장외집회도 필요하고 해임건의안, 국정조사 등 원내 저항도 추진해야 한다.

핵심은 메시지와 전략이다. 메시지는 명분, 전략은 실리를 얻기 위해 필요하다. 메시지는 메신저의 진정성이 관건이고 전략은 치밀한 준비가 필수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조국 정국'에서 메시지와 전략이 안 보인다는 평가가 적잖았다. 사실상 임명 강행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단계별로 선명한 메시지를 내놓고 즉각 행동에 옮기는 일사분란함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맹탕 청문회'가 단적인 예다. 20일 넘게 질질 끌다가 합의해준 게 증인도 제대로 못 부른 하루짜리 청문회였다. 한국당으로서는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 

전략이 미흡하면 절박함을 보여주는 무언가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날 한국당의 서울 신촌 장외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이래선 안 된다. 다 같이 삭발합시다"라고도 했는데 실제 이런 의견도 상당하다.

이제 와서 삭발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시나리오별로 준비하고 공감을 얻는 전술을 펼쳐야 한다. 전날처럼 임명 강행하자 2시간 넘게 의원총회에서 갑론을박하다가 국립현충원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곤란하다.

대통령의 말대로 조국 장관이 아직 범죄자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본인의 말대로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 역사적인 사법개혁을 이뤄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관 임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50%(10일 발표 리얼미터 여론조사 기준) 국민들 입장에서는 자신을 제대로 대변해줄 정치세력이 절실하다. 제1야당 한국당은 그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대의제, 의회정치의 전제조건이다. 보수도 진보도, 좌파도 우파도 모두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절규다. 이대로라면 국민들은 어디에 기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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