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손잡은지 1년, 문재인의 시간 vs 김정은의 시간

[the300][런치리포트-남북정상 평양공동선언 1년]①文 절치부심-金 배수진

김성휘 기자,최경민 기자 l 2019.09.16 19:16

지난해 9월19일 평양.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손을 굳게 잡았다. 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의 15만석짜리 스타디움 '5.1 경기장'에서 평양 시민을 상대로 "비핵화"를 외쳤다. 김 위원장은 박수를 쳤다. 두 정상은 하루뒤 백두산 천지를 전격 방문했다. 모두 역사를 다시쓰는 일이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평양을 다녀온 후 남북-북미 투트랙은 분주했다. 남북은 도로-철도를 잇기로 하고 12월 연결 착공식까지 가졌다. 북미는 2차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미가 각자 생각한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가격'이 안 맞았다.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초유의 '노딜' 정상회담을 마치고 헤어졌다.

남북 경제협력과 대북 외국인투자의 시작인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도 막혔다. 북한은 태도를 바꿨다. 우리 정부, 심지어 문 대통령까지 거칠게 비난했다. 남북을 연결하자는 과감한 합의도 진전이 없다. 회의론도 커졌다.

文 맞대응보다 인내로 절치부심= 이 고비들은 문 대통령에게 절치부심의 시간이었다. 북한문제의 핵심인 비핵화를 북미간 문제로 보면 남북대화는 북미협상에 종속변수다. 문 대통령은 첫째,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정관념에 머물지 않았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같이 굴러갈 때 한반도평화가 실현 가능하다고 주창했다. 새로운 상상력이다. 중재와 촉진이라는 공간도 그렇게 열었다. 

둘째, 끈기와 자제력으로 버텼다. 북한이 연일 신무기 실험을 감행할 때도 참았다. 외교무대도 적극 활용했다. 4월 방미, 6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땐 한미공조도 착실히 다졌다. 이를 통해 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에 판을 깔았다. 

16일 현재 남북미 당국은 톱다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치밀한 실무협상으로 서명란만 남긴 합의문을 도출해야 3차 북미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상황에 대해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혔다. 

국민들에겐 "대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1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우리 정부는 그 역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평화경제로 공동 번영의 미래를 당당하게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8일 무개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퍼레이드 하며 시민들의 환영에 답하고 있다. 2018.12.26.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정은, 마지막 기회 앞둔 배수진= 김 위원장은 마지막 기회를 기다린다. 그는 1년간 한중러 3국을 방문하고, 미국과 두 차례 회담을 나눴다. 광폭 외교다. 북한 지도자로선 이례적이다. 협상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바뀐 것은 없다. 영변 핵시설은 그대로 있고, 완화 혹은 해제된 경제제재도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여전히 '불가'의 영역이다. 완전한 비핵화, 완전한 체제보장까지 향하는 로드맵·시간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편 문 대통령과 미국 측 인사들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와중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난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톱다운'으로 일단 '하노이 노딜'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선미후남(先美後南)식 접근법으로 볼 수도 있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는 김 위원장으로선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는 결과라면 김 위원장의 리더십은 극심한 타격을 입는다. 내년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결산의 해다. 게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 새 미국 대통령과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협상 의지 만으론 부족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의심을 산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대한 의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를 통해 비핵화 시간표를 확정해야 한다. 군부 출신이 아니라 외무성의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 김명길 전 주베트남 대사 등으로 협상팀을 교체한 점은 긍정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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