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누가…'삭발의 이유' 3가지

[the300][야시시(野視視)]다른 수단 없을 때 결기라도, 결국 정치적 행위로 귀결…삭발 그 후는?

박종진 기자 l 2019.09.18 07:05

편집자주 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조국 파면 촉구하며 삭발한 황교안 대표와 나란히 앉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명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삭발했다. 사상 첫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지 1주일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여론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했다.

17일에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 강효상 한국당 의원이 머리를 밀었다.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 11일 박인숙 한국당 의원·김숙향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삭발했다.

한국당에 따르면 삭발 순번을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당분간 또 다른 의원들도 삭발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삭발의 이유는 우선 결기의 표현이다. 조국 장관 임명 이후 가장 먼저 삭발한 이언주 의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타살됐다"고 선언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무력한 야당'이란 비판에 삭발만큼 당장 눈앞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황 대표는 추석 연휴 기간 주변의 의견을 두루 듣고 삭발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약한 투쟁은 안 된다는 의견이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무기가 마땅치 않을 때도 삭발한다.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맞서보는 것이다. 상대적 약자의 수단이다.

과거 국회에서 삭발도 그랬다. 2007년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 삭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계획 수정에 충청권 의원들의 삭발, 2013년 정당해산 심판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집단 삭발 등.

'야당' 한국당도 약자다. 이날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비판처럼 "삭발은 약자들이 신념을 표현하는 최후의 투쟁방법인데,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조국 장관을 끌어내릴 힘이 없다. 조국 장관으로 사법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완강하다. 110석을 가진 거대야당이라곤 하지만 110석으로 '의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야권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국회를 보이콧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수단이 없을 때 결기라도 드러내는 게 삭발이라 해도 역시 '정치적 행위'로 귀결된다. 리더십 논란이 불거졌던 황 대표는 삭발한 채 점퍼를 입은 모습으로 당 안팎을 다잡고 있다. 보수 지지층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1호 삭발 이언주 의원은 보수 대통합 논의를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4월 바른미래당 탈당 후 무소속 신분이라 그간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이 적었다.

강남에서 3선을 노려야 하는 박인숙 의원도 한국당 1호 삭발로 자신을 '희생'했다. 비례 초선이자 대구 달서구병 당협의원장을 맡고 있는 강효상 의원도 내년 보수 텃밭에서 지역구 현역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대구 달서구병)와 일전을 앞두고 있다. 이날 강 의원은 아예 동대구역 앞에서 삭발했다.

문제는 삭발 이후다.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인정하듯 "조국도 싫지만 한국당은 더 싫다"는 게 민심의 목소리다. 삭발한다고 문재인 정권에 실망해 이탈한 사람들이 한국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조국 사태 이후 중도층이 늘어났을 뿐 한국당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치밀한 전략, 선명한 메시지,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그 바탕은 공감이다. 공감을 가로 막는 구태, 낡은 인식과 결별해야 한다. 세속의 번뇌를 끊어내기 위해 출가할 때 머리를 깎듯 '단절의 삭발'이 필요하다. 제20대 마지막 정기국회, 보수 대통합, 그리고 공천... 진짜 삭발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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