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이름 못 밝히는 피의사실 공표금지…오늘 논의

[the300]18일 당정협의서 피의사실 공표 원천금지 규정 논의…'국민 알권리' 침해 vs '인권' 보호 충돌

백지수 기자, 김민우 기자 l 2019.09.18 04:30
조국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방문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를 예방한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기존 수사 사건 공보 준칙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하고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18일 논의한다. 법무부가 마련한 이 규정 초안에 따르면 국회의원 등 공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실명 공개가 어렵다. 인권 보호라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과 법무부는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법·법무개혁 당정협의를 연다.

전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입수한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초안에는 기존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있던 '예외적 실명 허용 범위' 조항이 사라졌다.

또 새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의 부칙에는 "이 훈령 시행에 따라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하 '공보준칙')을 폐지한다"고 돼 있다.

기존 법무부 '공보준칙'에는 제17조 예외적 실명 공개 조항에서 사건 관계인이 공적 인물일 때에는 실명을 공개하도록 했다.

공적 인물에는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이나 정당 대표, 최고위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지방국세청장 이상과 이에 준하는 국세청 공무원 △대통령실 비서관 이상 공무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 기업 총수 △금융기관장 △이같은 직에 있었던 사람(전직) 등이 해당됐다.

하지만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르면 공인의 실명 공개를 포함한 사건 관련 정보 공개가 전면 금지된다. 기존 공보준칙에서는 △수사 의뢰 △고소·고발 △압수수색 △출국금지 △소환조사 △영장 청구를 포함한 체포·구속 여부 등에 대해서는 사건 단계별로 예외적으로 공보관을 통해 정보 공개가 가능했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사실상 기소 전에는 수사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없게 된다. 기소 전 수사 사건에 대해 예외적으로 '수사 착수 사실' 등만 공개하려 해도 법무부에 새로 설치될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컨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적용되면 현재 검찰 수사 중인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 등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검찰이 언론에 공식 확인해주지 못한다. 기소가 안된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관련 혐의라든지, 조 장관의 딸이 받는 입시부정 관련 의혹 등의 수사상황은 공개 승인이 없는 한 언론에 알릴 수 없다. 기자가 검찰 관계자를 취재해서 보도하더라도 검찰에서 누가 사건 내용을 알려줬는지 대검찰청 감찰부가 감찰에 나설 수 있다.

조 장관 사건이 아니더라도 고위공직자 등 공인과 관련된 사건에 모두 적용된다.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고 여론의 견제기능이 무력화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한 상황에서 기소 전 수사상황을 검찰이 알리지 않으면 제대로 수사를 하는지 감시가 어렵다는 얘기다.

새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도 기소 전 사건 정보의 예외적 공개 요건이 있기는 하다. △오보가 있을 때 △범죄 피해가 확산되거나 동종 범죄가 우려될 때 △공공 안전을 위한 대응조치를 국민들이 알 필요가 있을 때 △범인 검거를 위해 국민의 협조가 필요할 때 등만 해당한다.

기소 후에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승인 아래 공소사실 요지·수사경위·수사방법·범행 경과를 공개할 수 있지만 공인의 실명 공개는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기존 공보준칙에서 정한 '공인'의 경우에 한해서 검찰 소환이나 조사 사실이 알려졌다면 예외적으로 사진·영상 촬영은 허용하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이같은 내용을 이날 당정협의의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 논의는 법무부가 마련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초안이 토대가 될 전망"이라면서도 "조 장관 전임인 박상기 전 장관 당시 마련된 초안 중 하나로 논의 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피의사실공표금지 추진…속으로 웃는 건 국회의원(?)=피의사실공표죄 부활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보호’다. 국회의원 등 공인의 피의사실 공표도 금지한 법무부 초안은 이러한 논란을 한층 가열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형법 126조는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기 전에는 검찰이나 경찰이 범죄와 관련된 내용을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우선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법무부는 ‘공보준칙’을 통해 예외적으로 실명공개를 허용해왔다. 전·현직을 포함해 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 총수 등이 예외대상이었다.

10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 당시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이른바 ‘논두렁 시계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김성태 한국당 의원의 딸 KT채용비리 의혹 등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조항 때문이었다.

모두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 한다는 판단하에 공인의 비위 혐의 등이 재판도 받기 전에 공개됐다.

그러나 검찰의 이러한 피의사실 공표사실은 때로는 진실을 가리기도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재판도 받기 전에 혐의만으로 유죄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추후 무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여론의 인식 속에는 비위행위자로 남는 일이 빈번했다.

피의사실공표는 수사와 재판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피의자가 목숨을 끊는 경우 수사와 재판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이번에 법무부가 예외적으로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한 공보준칙 조항을 폐지하고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으로 대체하겠다고 초안을 마련한 이유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사실상 기소 전에는 수사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

피의사실공표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도 논쟁의 여지는 여전하다. 언론과 여론의 감시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 국민의 여론이 ‘표’로 연결되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 피의사실공표금지 추진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법무부의 피의사실 공표금지 추진을 ‘수사외압’이라고 규정하는 야권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 장관 가족을 둘러싼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왜 하필 지금이냐’는 논란도 제기된다.“기본적으로 피의사실 공표에 부정적이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고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에는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이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해 준다.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얘기다. 오히려 진정성이 훼손되고 정치공방으로 인해 왜곡된 결과물이 도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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