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떨고 있니…" 총선 때면 찾아오는 정치권 '물갈이론'

[the300][런치리포트-총선물갈이]쇄신 선거전략 동시에 당내 권력투쟁 수단

조철희 이원광 기자 l 2019.09.19 04:01

①킹메이커도 한순간 날아가는 '총선 물갈이'
-21대 총선 앞둔 정치권, 물갈이론 확산…역대 선거 때마다 현역의원 30~40% 교체

약 20년 전인 2000년 초.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며 사회 전반에 기대의 새바람이 불었지만 정치권에선 칼바람이 불었다. 그해 4월 예정된 16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물갈이'가 예고돼 현역의원들, 특히 중진의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물갈이는 현실화됐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선후보를 만든 일등공신으로 자타공인 한국 정치사 최고의 '킹메이커'였던 김윤환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것도 자신이 큰 도움을 줬던 당시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의 '개혁공천'에 밀렸다.
 
다시 20년 후 2019년 9월. 21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물갈이설이 여의도를 휘감는다. 각각 재선과 3선 현역의원이자 사회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직을 수행 중인 유은혜·김현미의 불출마설이 18일 여의도를 뜨겁게 달궜다. 여권의 한 축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과 중진 이상 의원 물갈이설까지 돌면서 민주당은 하루종일 술렁였다. 

◇물갈이 빈자리 들어왔던 이인영·우상호·임종석=2000년 16대 총선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현역 지역구 의원 26%를 공천 배제하는 등 선제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 다선 중진들이 갈렸다. 여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현역의원 29%를 교체했다. 김상현 등 역시 중진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빈자리는 신인들이 들어왔다. 지금은 여권 중진인 이인영(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민주당 의원)· 임종석(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86세대가 수도권에 진출했다. 한나라당도 이때 원희룡(제주도지사)· 오세훈(전 서울시장)· 임태희(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들어왔다. 

이해 선거는 시민사회도 정치권에 물갈이를 압박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전국 40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총선시민연대가 부적절한 후보를 대상으로 낙천·낙선운동을 벌여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거 승리를 위해 여당 공천의 물갈이가 필요했던 김대중 대통령도 낙천·낙선운동을 공개지지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운동은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며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에 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노갑 민주당 고문은 불출마를 선언해 스스로 먼저 물갈이의 앞길을 열었다. 

◇물갈이→공천학살…"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물갈이는 여야의 선거전략이고, 실제로 유권자들 다수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정치권 내부에선 권력투쟁 그 자체였다. 총선 이후 권력구도나 대선 경선 등 패권 경쟁이 걸려 있어 한쪽 계파가 상대 계파를 억누르는데 물갈이론을 내세웠다. 현역의원들의 공천탈락, 공천배제, 불출마 등 물갈이 비율은 역대 총선 모두 30~40%에 달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최고 어록은 당시 박근혜 의원의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한 한나라당은 2008년 총선에 앞서 현역의원 약 40%를 공천탈락시켰다. '친박'(친 박근혜) 의원들이 많은 영남권 중진이 타깃이었다. 김무성, 김재원 등 친박인사 10여 명이 낙천됐다.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고, '친박 학살'이라고 반발했다.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도 전쟁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4년 만에 물갈이 반격에 나섰다. '친이계'(친 이명박계) 진수희, 권택기 등을 비롯해 약 46%의 현역의원이 교체되자 이번엔 '친이 학살'이란 반발이 나왔다. '호남 물갈이론'과 '인적 쇄신론'이 지배한 민주당도 34%의 현역의원이 교체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진박(진짜 친박) 공천'이 화제였다. 이재오, 조해진 등이 물갈이 대상이 됐다. 민주당에선 현재 당대표인 이해찬, 청와대 비서실장 노영민, 정무수석 강기정이 대상이었다. 이미경·신계륜·유인태·전병헌·오영식·정청래 등도 포함됐다. 현재 국회의장인 문희상도 컷오프됐는데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이 없어 결국 전략공천돼 6선에 성공했다. 

◇"물갈이해도 거수기 초선만 느는 현실"=총선 물갈이는 여당에서 더 거센 편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갈이 후 빈자리에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다수 공천된다는 것인데 실제로 17대 총선 때는 '친노'(친 노무현) 인사들이, 18대 총선 때는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물갈이는 시민사회는 물론 일반 여론의 지지도 매번 크게 받아 왔다. 지난 4월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현역의원 교체 지지 여론이 47%인 반면 현역 의원 재선 지지 여론은 24%로 2배 차이가 났다. 역대 총선 때마다 실시되는 같은 내용의 조사 때도 이같은 비율이 대체적이었다.

물갈이의 부작용이나 후유증도 적지 않은 편이다. 공천에 탈락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은 신당을 창당해 총선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때는 김윤환·김상현 등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다. 18대 총선 때는 서청원·홍사덕 등 탈당인사들이 '친박연대'를 만들어 총선에서 14석을 얻었다. 

물갈이의 빈자리를 대부분 초선의원들이 채우지만 국회의 선수(選數) 중심, 당론 중심 구조에선 '거수기 초선'만 늘어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신인의 양적인 증가보다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는 초선의원 유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도권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인위적인 물갈이는 집단적 반발과 분열을 초래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능력 있는 정치신인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활발히 등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총선을 앞둔 정당의 인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②與 '386', 野 '구태' 넘어라…'20대 총선' 쇄신 경쟁
-여야 '신인 가산점' 등 인적 쇄신 박차…'인물 바꾸기' 피로감, 중진 반발 과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쇄신’ 경쟁에 돌입했다. ‘386’, ‘구태’ 등 각 진영을 발목 잡는 대중 인식이 극복 대상이다. 장기간 당을 지키며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중진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18일 민주당 ‘제 21대 총선 공천심사 및 경선방법 주요 내용’에 따르면 민주당은 경선 후보를 선발하는 공천 심사에서 정치 신인에게 10~2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규정을 새롭게 신설했다. 경선 때 정치 신인에게 부여되는 가산점도 현행 10%에서 10~20%로 확대된다. 공천 심사 과정을 거쳐 2~3명의 경선 후보를 선발하는 게 원칙이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감산 기준도 확대했다. 공천 심사 및 경선 시 중도 사퇴 경력이 있는 선출직 공직자는 25%가 감산된다. 기존 10%에서 25%으로 확대된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결과 하위 20%에 대한 감산 기준도 10%에서 20%로 늘었다.

단수 후보자 선정 시에도 현역의원은 경선을 원칙으로 했다. 심사 총점에서 1·2위 후보자 격차가 30점 이상이거나 공천적합도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20%p 이상일 때는 상위 후보자가 단수 공천되나 현역의원은 예외다.

한국당도 쇄신에 힘쓴다. 한국당은 공천심사 시 정치신인에게 5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내용이 확정되면 정치신인 가산점이 민주당의 2배가 된다.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는 논의 끝에 이같은 내용을 당 지도부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중징계·탈당·경선불복 최대 30% 감점 △현역 선출직 공직자 중도사퇴 최대 30% 감점 등도 고려 중이다. 

이같은 양당의 노력은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 피로감과 맞물린다. 여권의 일부 ‘386’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정책적 비전 없이 과거 경력을 앞세워 기득권을 형성한다는 우려다. 또 ‘조국 정국’은 이른바 ‘386 리스크’의 파괴력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당내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면에서 국회 농성과 장기간 ‘보이콧’을 통해 ‘대안 없는 반대’ 정당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지적이다. ‘5·18 망언’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둘러싼 대응 등은 과거 정당 이미지를 굳힐 것이란 위기감을 부추긴다.

문제는 내용이다. 뚜렷한 비전 없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인물 바꾸기’로 감동을 주기 쉽지 않다. 1987년 민주화 후 8차례 걸친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정당이 30~40% 수준의 ‘공천 물갈이’를 했으나 정치권을 향한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내부 반발도 극복 대상이다. 장기간 당의 성장에 기여했던 중진 의원들에게 쇄신은 ‘토사구팽’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 인적 쇄신이 당내 갈등으로 번지면 총선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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