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약자보호 걸고 드라이브 시작 "부자 벌금 더 내라"

[the300]개혁과제 살펴보니…사법형평성 저해·재산권 제약 부작용 우려도

백지수 기자 l 2019.09.19 05:10
/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

18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후 처음 열린 당정협의.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논란이 된 피의사실공표 금지문제(수사공보준칙 개정)를 뒤로 미루는 대신 각종 개혁과제를 앞세웠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공정의 명분을 내걸고 20대 마지막 정기국회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날 당정이 도입하기로 협의한 △주택임차인 계약갱신청구제도 △재산비례벌금제 △형사공공변호인(피의자 국선변호인)제도 △집단소송제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 등 반론도 만만찮다.

◇전·월세 세입자에게도 계약갱신청구권=당정은 임대차 관련 법 개선을 약속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골자다. 주택 임대차 계약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전·월세 세입자가 한 번은 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강제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에선 최대 2년의 임대차 계약기간을 명시하지만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적극 보장하진 않는다. 최대 10년까지 계약갱신청구기간을 보장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다르다.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청구제도 도입은 19대 국회에서도 추진된 여당의 핵심 공약이다. 20대 국회에서도 박영선·윤후덕·정성호·윤호중·박홍근·김상희 등 민주당 의원들이 임차인의 안정적 주거 보장을 위한다는 취지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가할 수 있고 주택 시장의 변동성을 지나치게 규제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 3년 넘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19.09.18. photo@newsis.com

◇부자에게 더 많은 벌금을=재산비례벌금제도도 도입한다. 범법자의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차등 부과하는 내용이다. 범죄행위의 경중에 따라 벌금일수를 먼저 정하고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정한 ‘하루치 벌금액’을 곱해 벌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이 검토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자 조 장관이 후보자 시절 발표한 정책 공약이다. 부자 과세처럼 벌금도 부자에게 더 많이 내도록 해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발상이다. 예컨대 같은 100만원 벌금형이더라도 재산 1조원인 사람과 재산 1억원인 사람에게 집행효과가 전혀 다른 현실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오히려 사법적 형평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형기준이 개인마다 달라진다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효성 논란도 있다.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추정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세자료를 활용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지만 판결 때마다 피고인의 정확한 경제상황을 일일이 파악하려면 행정적 비용이 낭비될 수 있다.

◇미성년·중범죄 피의자에게 국선변호인을=법무부가 지난 6월 입법예고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도 추진한다. △미성년자·청각장애인·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피의자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중범죄 피의자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체포하면 수사 단계부터 자동으로 국선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그간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한 피의자나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만 법원이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인이 제공됐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가 도입되면 수사기관이 제도 적용 요건이 되는 피의자를 체포한 직후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체포 사실을 통지해 국선변호인을 파견해야 한다.

다만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국선변호인을 파견하는 주체가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이라는 점을 문제삼는다. 피의자 기소를 법무부 산하인 검찰(검사)이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법무부가 피의자 변호와 기소를 동시에 담당하는 것이 모순적이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다.

◇적용 범위 넓힌 집단소송제도=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도입 논의가 불붙은 집단소송제 확대 도입도 당정이 추진할 정책이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일부가 집단으로 소송을 걸어 이기면 다른 피해자들도 배상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BMW 차량 화재 사고 등을 계기로 한국당 등 야당에서도 도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책이다.

기존엔 증권분야에 한정해 집단소송제도가 운용됐다. 법무부는 박상기 전 장관 시절부터 △제조물책임 △부당공동행위·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부당표시광고 △금융소비자보호 △개인정보보호 △식품안전 △금융투자상품 분야 등 피해구제 실효성이 인정되는 영역에 집단소송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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