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현종·삭발·AOA, 세가지 스타일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9.19 18:00
# “It’s my style(이게 내 방식이다)”.최근 관가의 유행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영어로 말다툼하던 과정에서 했다는 말이다.

‘김현종 스타일’은 이미 유명하다. ‘꼼꼼하다’ ‘저돌적이다’ 등이 표면적 호평으로 느낄 만큼 실제 평가는 더 박하다. 까칠한 수준을 넘는다. 말이 짧다. 반말이 기본이다. 친한 형 동생 문화 속 하대(下待)가 아니다. 상급자에게도 말투는 비슷하다.

일하다 마음에 안 들면 영어로 고함을 친다. 김현종은 업무 성과를 내려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상사의 예측 가능성이 부하 직원의 긴장감을 낮춘다는 이유를 댄다. 대외 협상 방식을 대내 조직 관리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는 셈이다.

직원들은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국가안보실을 나온 이들은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와 함께 출장가는 것을 적잖은 직원들이 꺼린다. 그렇기에 ‘김현종 스타일’은 과한 포장이다. 그저 ‘김현종의 무례’일 뿐이다.

김현종은 뒤늦게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이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장관을 장관으로 대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진 않았다.

#정치권의 유행은 삭발이다. 삭발 투쟁이라지만 투쟁의 ABC가 없다. 정세를 진단하고 투쟁 수위와 수단을 택하며 이후 투쟁 방향을 밝히는, 투쟁의 기본 말이다.

삭발의 본질을 놓치니 비장미가 떨어진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삭발 후 첫 행사인 여성정치 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제 머리 시원하고 멋있죠. 옛날에 율 브리너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더 멋있나”라며 농을 던졌다.

절실함·절박함이 전해지지 않기에 ‘릴레이 삭발’은 그저 한때의 ‘유행’으로 비쳐진다. 스스로는 결의에 찼다지만 관전자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진정성을 의심한다. 공천을 노리는 정치적 제스처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삭발 투쟁의 본질이 훼손된다. 절실한 투쟁 수단인 삭발을 가져왔다면 나름의 변주를 해야 하는데 상상력이 부족하다. 대의정치의 당사자들은 삭발 순례객이 된다.

그 과정에서 삭발이 희화화된다. 삭발 후 ‘황교안 패러디’를 접하며 2030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국당은 자평하지만 웃프다. 삭발에 담긴 투쟁의 의미 대신 그저 ‘삭발 스타일’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황교안 패러디’를 보며 지난 2017년 대선 때 “MB 아바타입니까”와 “누구입니꽈?” 패러디로 소비되며 사라진 한 후보가 떠오른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당대표가 비장한 결의를 하고 삭발까지 했는데 이를 희화화하고 게리 올드만, 율 브리너 운운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하다”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추석 연휴 언론을 도배한 이슈는 ‘조국’이었지만 유튜브 등을 지배한 이는 AOA였다. 2012년 데뷔한 이 걸 그룹은 섹시 이미지를 앞세워 탄탄히 활동해왔다. ‘짧은 치마’ ‘심쿵해’ 등 히트곡이 여럿이지만 그렇다고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 정도의 정상급은 아니다.

그런 AOA가 여성 그룹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퀸덤’에서 동료그룹 마마무의 ‘너나 해’를 불러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이들은 자신만의 무기였던 섹시를 감춘 채 남성 스타일의 검은 슈트를 입었다.

노래 중반 클라이맥스 땐 여성 의상과 하이힐을 신은 남성 댄서들이 등장했다. 남장의 여성 AOA와 여장의 남성 댄서는 파격의 조화를 연출했다. 변주를 넘는 전복의 과정이었다. 낡은 관념과 고루한 문화를 깨뜨리는 ‘AOA 스타일’에 모두가 열광했다.
방송 1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535만뷰(풀버전 230만뷰)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들은 단순히 성 역할 전도만 보여주지 않는다. 무대를 마친 뒤 AOA는 남성 댄서들과 함께 껴안고 격려한다. 동료로서 동질감을 공유한다. ‘AOA 스타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한민국에 ‘김현종 스타일’ ‘삭발 스타일’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작은 위안을 얻는다. 결국 낡은 것을 뛰어 넘으려는 태도와 노력, 전복을 꿈꾸는 상상력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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