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부론, 대전환 혹은 747의 추억?…"정책대결 계기돼야"

[the300][런치리포트]한국당, 국가주도→민간자유 "경제방향 바꿔야" 정책 전면전

박종진 기자, 강주헌 기자 l 2019.09.23 19:03


"이대로 경제가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자유한국당이 작심하고 내놓은 민부론(民富論) 서론의 첫 문장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를 구성하고 22일 165페이지짜리 정책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을 바탕으로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양축으로 상징된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국가 주도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억누르고 시장의 흐름에 역행했다고 판단한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소득불균형은 심화 됐으며 주력산업은 흔들리고 국가재정 건전성마저 위태롭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민간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일자리도 정부가 아닌 기업이 만들 수 있도록 하고, 복지도 획일적 무상복지가 아닌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는 맞춤형 복지를 말한다.

일각에서는 철 지난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는 혹평도 내놓지만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경제정책에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더라도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거나,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부론이 말하는 우리나라의 현주소= 민부론은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나라 경제는 '파괴 열전'이었다고 평가한다. 경제성장률은 2017년 3.2%에서 지난해 2.7%로 하락한 후 올해는 1%대까지 전망된다는 것이다. 2018년 실업률은 2001년 이후 최악인 3.8%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기록이 갱신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기저효과로 그나마 일자리 증가폭이 상승했지만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 즉 세금으로 만든 초단기 일자리라는 비판이다.

가계 소득도 파괴됐다고 분석했다. 가구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중 무직가구 비율이 2017년 4분기 43%에서 2019년 2분기 55%로 급증했고,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44만원인데 이전소득은 65만원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말 그대로 일하는 가계에서 배급받는 가계로 전락했다는 설명이다.

중산층(중위소득 50~150% 가구) 비율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하락한 점,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급증 전망도 문제로 꼽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올해 36.6% 추정)가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국가부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공공기관의 부채를 포함한 국가부채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해 105% 수준까지 치솟아 재정위기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신설하는 현금성 복지 등으로 지방재정적자 증가, 원전폐기·인력 증가 등으로 공공기관 부채 증가도 위험요인으로 더해진다. 




◇"경제에 자유를 허하라"= 문제의 원인은 친노조·반노동 정책, 반시장·반기업 정책, 국가만능개입주의에 있다고 파악했다. 그러면서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 "애국과 충성으로 무장된 어제의 국민은 없다. 오늘의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관심과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 독립국’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연결된 개인이자 완전히 새로운 인류로 진화된 세계시민의 시대다"라는 게 민부론의 분석이다.

목표는 2030년 국민소득 5만 달러(현재 약 3만 달러), 가구소득 1억원(2017년 약 5700만원), 중산층 70%(현재 약 60%)로 잡았다. 3만 달러를 달성하고도 위기를 겪은 남유럽 사례를 볼 때 4만 달러 수준으로는 진입해야 흔들리지 않는 국가가 될 수 있고 10년 뒤 그 수준이 5만 달러라는 의미다.

정책 방향은 경제활성화, 경쟁력 강화, 자유로운 노동, 지속가능한 복지 등 4개다. 정책과제는 20개를 제시했다. 먼저 경제 활성화 부문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기 △혁신적 규제개혁 △자본시장 글로벌화와 조세의 국제경쟁력 강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약화에 대비한 양자 통상체제 강화 △탈원전 중단, 국가에너지정책 정상화 등이다.

또 경쟁력 강화 부문에서는 △기업의 경영권과 경영 안정성 보장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혁신기반 조성, 자유로운 노동시장 부문에서는 △국가중심 노동법에서 시장중심 노동법으로 전환 △노조의 사회적 책임 부과 등을 과제로 내놨다.

지속가능한 복지 부문에서는 △미래에 대비한 복지시스템 재설계 △복지 포퓰리즘 근본적 방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상 진단과 정책 방향은 비교적 충실히 제시했지만 구체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4차산업혁명 부분에서 블록체인 산업의 암호화폐공개(ICO), 거래소공개(IEO) 허용이나 빅데이터 거래소 설립안처럼 기존에 논의되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적잖다.

이와 관련 김광림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입법 추진 과정 등에서 더욱 구체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민부론은 요약본으로서 각 부문별로 구체적 논의를 담은 별개의 비공개 책자도 있다.

◇낡은 신자유주의 재방송?= 민부론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정책논쟁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미래세대에게 어떤 일자리를 줄지, 꿈을 줄지 논의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갈등만 하고 있었다"며 "본격적인 정책대결이 이뤄져 전환기 경제에서 대안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부론의 주장을 시장원리만을 최우선 하는 신자유주의의 재탕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방향성 자체가 신자유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금 우리 경제가 기업들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통해서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성 교수는 "민부론의 방향성은 공감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민부론에서 강조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의 경우 거센 사회적 저항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노동분야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을 무조건 동결하자고도 안 되고, 근로시간 단축도 원래 상태로 돌리기도 어렵고, 비정규직도 물꼬가 터진 상태"라며 "안 된다고 억제할 수만 없는 노릇인데 이런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 문제의 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5만 달러와 같은 '목표 달성'을 내세우기보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2030년까지 5만 달러 얘기했는데 MB(이명박) 정부(소위 7·4·7 공약) 때 마지막으로 한 다음에 이런 것은 안 했다"며 "우리나라 경제가 한두 개를 건드려서 될 게 아니고 구조적 문제에 봉착한 게 벌써 20년이다. 한국당이나 민주당 모두 구조적 문제에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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