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통령 비서실장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9.10.18 04:25
올 1월초 대통령 비서실장이 바뀐다. ‘젊은 비서실장’ 임종석이 떠나고 ‘헤비급’ 노영민이 돌아온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시기가 조금 빨랐다. 조급했다기보다 새로워지자는 여권 내 요구가 워낙 컸다.

타이밍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60개월)의 1/3인 20개월을 채운 시점이었으니까. ‘원조 친문’의 귀환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강한 청와대를 뜻했다.

‘하모니(조화)’형인 임종석과 달리 노영민의 그립은 강하다. 관심 사안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국회 등을 향해서도 강경 대응을 주문한다. 임기 초반을 넘어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시점, 젊은 임종석보다 정통파 노영민을 택한 이유다.

선택 이후 10개월을 우린 경험했다. ‘원조 친문’은 ‘원 팀(one team)’을 강조했지만 공간을 넓히기 힘들었다. 2012년 문재인 캠프에 비해 2017년 문재인 캠프가 ‘확장적’이었다면 2기 청와대는 1기 청와대보다 좁아졌다. ‘통합과 협치’ 대신 ‘정면 돌파’ 이미지가 형성된 게 2기 청와대부터인 것은 비서실장 교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 시스템은 대통령이 아닌 비서실장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보안’을 강조하다보니 ‘소통’은 밀려난다.

‘강한’ 청와대, ‘원팀’을 외치지만 실제 평가는 박하다. 정권초 쏟아졌던 ‘청와대 정부’란 말은 어느새 사라졌다. 여권 한 인사는 “청와대든, 내각이든, 여당이든 일을 잘 하면 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마저 없어진 현실이 더 뼈아프다”고 말했다. 적잖은 청와대 참모들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청와대를 떠난 것도 영향을 줬다.

조국 논란을 거치며 청와대는 더 약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장점이라던 공감 능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핵심 참모(staff) 기능, ‘쓴소리’의 부재 탓이다. 미국의 언론인 겸 다큐멘터리 작가 크리스 위플은 저서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s)’에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쓴소리를 해야하는 자리가 비서실장”이라고 썼다.

이 책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레온 파네타는 “대통령이 듣기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악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에는 참모를 향한 비서실장의 쓴소리만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서실장(Chief of staff) 역할 중 ‘실장(Chief)’을 ‘비서(staff)’보다 앞세우는 것처럼 비쳐진다는 얘기다. 노영민의 페이스북에는 현안에 대한 공감, 소통보다 자찬(自讚)만 담겨있다.

일각에서 나오는 ‘책임론’에 여권은 발끈한다. 정치 공세로 치부한다. 조국 사퇴 후 밀리면 안 된다는 위기 인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냉정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송구하다”며 사과한 시점이다. 위기가 말그대로 위험과 기회라면 위험에 비관할 게 아니라 기회를 찾아 새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비서실장의 제1 역할이 대통령 보좌라면 대통령이 새로운 국면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조국 논란 속 의도치않게 검찰 개혁의 틀이 커진 것처럼 넓고 다양한 진지를 구축한다면 다른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게 ‘책임론’이 아니다. 

결국 책임도 타이밍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앞둔 바로 지금이 책임질 때다. 위플은 비서실장 자리를 이렇게 정의했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잘 된 일엔 이름 한 줄 못 올리는 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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