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文대통령의 3일 가족장, 그리고 '불법 타다'

[the300]

박종진 기자 l 2019.11.01 08:20

편집자주 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29일 오전 서울시내에서 타다차량이 운행을 하고 있다. 2019.10.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직 대통령 모친상.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가족장으로 치렀다. 최고 권력을 가진 국가 지도자의 부모상이지만 형식이 특별한 건 없었다. 4강(미·일·중·러) 대사의 조문을 받는 등 '대통령' 문재인의 역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아들' 문재인의 자리였다.

상주(喪主) 문재인은 가족 친지 이외의 조문을 정중히 사양했지만 야당 대표와 종교계 지도자 등의 조문은 받았다. 장례 마지막 날에는 여권 인사들도 참여했다. 대통령과 자연인의 역할이 혼재되지만 혼란도 논란도 없다. 적어도 2019년 대한민국에서는 얘깃거리조차 안 된다.

360년 전에는 달랐다. 익히 알려진 예송논쟁(禮訟論爭)이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어머니 자의대비(장렬왕후)가 상복을 1년 입을지 3년 입을지를 놓고 서인과 남인이 싸웠다. 차남인 효종을 자연인(일반 사대부)으로 볼지 임금으로 볼지에 따라 갈리는 문제다. 7년을 싸웠다.

'그때 우리 조상들은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부르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오늘날에는 쓸데없는 논쟁의 상징처럼 여긴다. 물론 당시에는 절실했다. 왕권과 신권을 내세운 치열한 정치투쟁이었다. 어떤 이는 '고상한 방법'으로 싸웠다고도 평가한다.

그렇다고 백성에게 무슨 도움을 준 논쟁은 결코 아니었다. 17세기 조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15세기만 해도 조선의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16세기부터 사림의 등장과 이어진 사화, 붕당의 고착화 등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파벌 싸움은 날로 격화됐고 지배층의 담론은 공허해졌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했다. 17세기 조선은 새로운 돌파구가 간절했다.

이웃 나라들의 17세기는 화려했다. 중국은 청나라 강희제 치하에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법제를 정비하며 사상 최강대국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에도 막부시기인 일본은 산업이 발달하고 상업자본이 성장하면서 겐로쿠 시대라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모친상에서 굳이 수백 년 전 논쟁까지 떠올린 건 요즘 상황이 겹쳐 떠올라서다. '타다'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국회에는 '타다금지법'도 올라와 있다. 소위 '빅데이터 3법'은 여전히 통과가 안 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각각의 논리는 있다. 하지만 AI(인공지능) 시대, 수소사회, 공유경제와 같은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 변화를 앞두고 있다. 아니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사고의 틀, 인식의 전제부터 바꿔야 변화에 살아남는다. 변화를 주도하려면 더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의 논리, 과거의 방식에 얽매여선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간다.

결국 해법은 정치권에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혁신을 위해 국정 동력을 살려야 할 여당은 '조국 사태'에도 불구하고 통렬한 반성이나 쇄신이 없다. 야당은 신(神)을 팔아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는 이들의 집회에 달려나가는 실정이다.

360년이 아니라 36년 후, 아니 불과 3~4년 후에 지금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때 왜 그랬을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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