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과시한 '야마' 아는 대표 정동영…"기자에게 서비스한 것"

[the300]文대통령과 5당 대표의 만찬 회동 직접 브리핑…'선거제 개혁' 주도권 선점 노력

이지윤 기자 l 2019.11.11 16:55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3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비공개 만찬 회동 이후 주목받은 인물은 원내 5당의 수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다. 정 대표는 직접 브리핑을 진행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른 당 대표들이 대변인을 통해 ‘전언’을 한 데 반해 정 대표는 생생한 언어로 만찬장 상황을 전달했다. 

청와대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만찬 회동 이후 곧바로 국회로 돌아와 밤 9시30분에 브리핑을 하게 된 건 정 대표의 생각이었다. 정 대표는 머니투데이 더(the)300과 만나 “일일이 기자들의 전화를 받기보다 한꺼번에 브리핑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며 “기자들의 요구가 있어 제가 서비스를 한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정 대표는 MBC 앵커 출신에 대변인을 여러 번 역임한 경력을 가진 ‘야마(핵심을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를 아는 대표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만찬 회동이 두 시간 정도 정치 쟁점에 접근하지 못하자 ‘분권형 개헌’ 현안을 처음 꺼낸 것도 그였다. 이후 토론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제 개정안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정 대표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사이의 선거제 개정안 관련 공방과 관련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고 브리핑하며 언론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문 대통령이 손을 들어 상황을 말렸다고 행동까지 묘사했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비슷한 내용을 브리핑했으나 정 대표에게 묻혀 상대적으로 이목을 끌지 못했다. 

다음은 정 대표와 문답.

-청와대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피곤했을 텐데 직접 브리핑한 이유가 있나.
▶청와대에 가기 전부터 ‘다녀온 뒤 브리핑을 해주면 좋겠다’는 기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일일이 전화를 받기보다 한꺼번에 브리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응했다. 청와대에서 바로 끝나자마자 와서 서비스를 했다. (웃음) 

-만찬장에 자리했던 대표가 직접 상황 설명을 해줘서 생생했다는 반응이 많다. 
▶각 당의 대변인들만 브리핑을 했다면 기자들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내가 직접 설명을 해줘서 기자들도 기사에 살을 붙이기 좋았다고 그러더라. 

-만찬이 시작되고 처음 두 시간 정도는 정치 쟁점을 얘기하지 못 했다는데. 
▶식사하며 남북관계를 한 시간 정도 얘기했다. 현안이 끝이 없으니 한일관계와 노동 문제, 소상공인 문제도 얘기했다. 그러다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내가 쟁점 현안에 대해 얘기하자고 말했다. 촛불시위가 촛불혁명이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 개혁과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토론이 시작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사이 고성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본격적 토론에 들어가서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 개정안 얘기가 나오며 고성이 오갔다. 각자의 입장이 대통령 앞에서 첨예하게 부딪힌 셈인데 나는 이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말하자면 다툴 수밖에 없는 주제다. 서로 입장이 명백하게 다르다면 적당히 인사치레로 넘어가는 대신 확실하게 각을 세우고 서로의 입장으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 자리가 자주 있어야 한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국회의장 주재 정치협상회의나 실무그룹을 통해 토론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 

-분권형 개헌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 반응이 어땠나.  
▶작년에 대통령이 국회에 개헌안을 냈다가 무색하게 된 적이 있다. 나는 각 당이 개헌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 이후 서로 추진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도 ‘내년 총선에서 각 당이 공약으로 하도록 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식으로 개방형 대답을 했다. 문 대통령이 다시 개헌 이슈를 꺼낼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정부·여당이 공약으로 걸어야 힘이 실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추가적으로 어제 만찬장에서 문 대통령에게 전한 얘기가 있다면.
▶문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계속 언급하지만 선거제 개혁 얘기는 안 한다. 그래서 어제 나도 그렇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문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 얘기만 하고 선거제 개혁 얘기는 안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간접 화법이었지만 선거제 개혁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본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이 야당 때 강력히 주장했고 본인의 신념인 것은 맞다.  

-앞으로 선거제 개혁에 있어 어떻게 임할 생각인지.
▶우리가 숫자가 작아서 그렇지 평화당이 없었으면 선거제 개혁도 없었다. 평화당이 작년에 여기에 당의 운명을 걸겠다고 말했을 때 누가 선거제 개혁이 여기까지 오리라 생각했을까. 당시 당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안 될 일을 뭣하러 하냐고 그랬다. 

선거제 개혁을 내가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외쳤다. 지금 8부 능선까지 왔는데 내 공을 내세우려는 게 아니라 정치는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 원칙을 가지고 나아가며 끝까지 해보는 거다. 어제 청와대에서 선거제 개혁이 쟁점으로 등장하고 고성이 오갔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붙었던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이번 계기로 선거제 개혁이 다시 의제로 떠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사진=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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