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국회 '저항의 역사'

[the300]13대~20대 국회 '저항'의 기록, 단식·방탄·폭력 등 방식도 다양…얻고 잃은 것은 무엇?

김상준 유효송 기자, 김예나 원준식 인턴기자 l 2019.11.15 06:00



①민주화 이후 13~20대 국회 저항의 기록

2019년 4월 26일 새벽, 국회 의안과 앞에 빠루(쇠 지렛대)와 망치가 등장했다. 선거제 개편과 사법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물리적으로 극단의 상황까지 다다랐다. 토론과 조정의 공론장이어야 할 국회가 혼돈과 무질서의 카오스 상태로 빠져들었다. 급기야 문희상 국회의장은 33년 만에 국회 경호권까지 발동했다.

누군가는 당시 상황을 두고 "정치적 투쟁과 저항이었다"고 말한다. 임기를 반년 정도 남긴 20대 국회는 아직도 곳곳에서 저항을 이야기한다. 패스트트랙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언제 또다시 충돌 사태를 낳을지 모르고, 제1야당은 다시 장외투쟁 카드를 꺼내든 상태다.

사실 국회와 정치권은 오랜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물론이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각 정당과 정파, 의원들마다 저항의 몸부림을 친 일들이 적지 않았다. 단식,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의원직 사퇴, 장외투쟁 등 방식도 다양했다. 민주화 이후 13~20대 국회가 기록한 '저항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면서 무엇을 잃고 남겼는지 짚어 봤다.

◇13대 DJ '단식'…목숨 건 저항=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저항의 상징이다. 그의 저항은 때론 목숨을 걸 정도로 절박했고, 국민의 요구를 대변해 많은 지지를 얻었다.

김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 때 지방자치제 실현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다.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그는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이 지방자치제 약속을 어겼다며 그해 10월 8일부터 10월 20일까지 13일 동안 단식했다.

단식 4일째인 10월11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평화민주당 당사를 찾아 김 전 대통령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단식을 계속했고 단식 8일째인 10월 15일 결국 건강이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10월 20일 여야 합의로 요구사항이 타결되고 나서야 김 전 대통령은 단식을 멈췄다.

◇14대 '장외투쟁', 15대 '방탄국회'=14~15대 국회는 '공전의 국회'였다. 14대는 원 구성까지만 126일이 걸렸고, 15대는 총선 공정성 시비 등으로 여야가 대립해 256일 동안 공백 상태가 있었다.

14대 국회는 '장외투쟁'으로 시작했다. 1992년 7월 13일 당시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이 참석한 최고위원 연석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가 관철되지 않는 한 상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정상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당은 전국 규탄대회를 열었고, 그 결과 원 구성까지 126일이 걸렸다.

'방탄국회'라는 말은 15대 국회 때 처음 등장했다.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정당이 나서 문제 의원들의 체포·구속을 막았다.

'세풍 사건'이 시작이었다. 1998년 8월 한나라당이 1997년 대선에서 국세청 등을 동원해 자금을 모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임시국회가 열린 상태여서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의 소환조사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불구속기소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대선 이후 국회가 소집한 25회 회의 중 17회가 한나라당이 단독소집한 방탄국회였다. 국회 회의의 68%가 법안·정책 논의가 실종된 '제식구 감싸기'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16대 '몸싸움 국회'=16대 국회 때는 저항 과정에서 몸싸움이 자주 벌어졌다. 2004년 3월 12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처리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처리를 저지하려 했지만 결국 국회 경위들에 의해 본회의장에서 끌려나갔다.

같은 해 12월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나서던 열린우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경위들의 호위를 받아 회의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17·18대 '무기(武器) 국회'=17~18대 국회 때는 해머, 전기톱, 망치 등 '무기'들이 등장했다. 2007년 12월 14일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은 'BBK 특검법' 처리를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특검법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고 민주신당은 의장석을 탈환하려 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정문을 쇠줄, 쇠파이프, 전선 등으로 막자 국회 경위가 전기톱을 이용해 문을 개방했다.

당시 민주신당 강기정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의장석을 둘러싼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몸싸움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18대 국회 때는 신무기가 등장했다. 2011년 11월 22일,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를 심사하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렸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김 의원이 투척한 최루탄 가루를 맞았고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19·20대 '동·식물 국회'= 2012년 5월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주도로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그 직후 국회의 저항은 잠시 소강 상태를 맞았지만 오히려 '식물국회' 시대를 열었다.

2014년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151일 동안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5월 2일 본회의부터 여야 대립이 이어졌고 9월 30일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특별법을 극적으로 처리하며 사태를 마무리했다.

2016년엔 필리버스터가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2016년 2월 23일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3월 2일 이종걸 의원의 발언을 끝으로 192시간, 만 8일만에 끝났다.

20대 국회는 다시 '동물 국회'로 돌아왔다. 지난 4월 패스스트랙 충돌은 역대 저항의 역사 중 가장 참혹했다.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저항이라 이름붙인 과정 속에서 폭력으로 불릴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②정치적 목표 달성, 국회 물갈이 계기되기도

국회의 '저항'은 대부분 여론의 뭇매를 맞아 의원들로선 '잃는 장사'였다. 머리카락, 건강, 체통, 정치적 지위 등을 대가로 내야 했지만 성과 없이 질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론의 지지를 얻는 사안의 경우 중요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됐고, 저항이 불러온 파행의 반작용으로 국회가 자정 노력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재에 저항했던 DJ·YS의 단식=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회 저항의 역사에 일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단식의 원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인데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 간 단식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저항은 군부독재를 끝낼 민주화 세력을 한데 모으는데 기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단식으로 정치개혁을 이끌었다. 1990년 지방자치 실현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하자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지방자치제 약속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1995년 지방자치제 선거가 부활했다.

◇몸싸움의 저항이 물갈이로=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국회 안에서 엄청난 저항의 몸부림이 있었다. 주먹질까지 오갔던 모습은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지만 결과적으로는 한달 뒤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역대급 물갈이'로 이어졌다.

17대 국회는 초선 의원 비율이 62.5%에 달했다. 당시에는 의원들의 연령대가 낮아져 젊은 정치가 기대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탄핵 정국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워 국회의 인사 혁신을 이루게 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싸움을 끝내자, 국회선진화법 탄생=물갈이된 17대 국회라고 큰 차이는 없었다. 이번엔 'BBK 특검법'을 두고 충돌했다. 18대 국회는 '최루탄 국회', '해머 국회'라는 오명까지 얻는 등 국민 절반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기관'으로 국회를 꼽을 정도였다.

18대 국회에선 국회 '폭력의 역사'를 끝내자며 여야가 '국회선진화법'에 합의했다. 2012년 5월 2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 설치, 안건 자동상정 등이 담겼다. 폭력 국회는 엄연한 불법이 됐다.

◇20대 국회, 멀어지는 '일하는 국회'의 꿈=국회는 다시 스스로 '국회 혁신'을 말한다. 20대 국회는 '동물·식물국회'로 불리며 사상 최악의 법안 처리 성적을 남겼다. 여당은 '일하는 국회'를 외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법 개정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하는 국회법도 필요하겠지만 법을 만든다고 해도 안 지키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법 이상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갈등이 아니라 갈등을 푸는 방식이 문제"라며 "받아들이고 양보하는 과정도 룰"이라고 말했다.

싸워도 룰을 지키며 싸워야 한다. 정치가 제대로 싸울 때 긴 저항의 역사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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