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임종석과 김세연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11.20 04:25
#21대 총선을 다섯 달 앞둔 2019년 11월 17일. 총선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예고된 출발은 아니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모두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를 짠 것은 아닌데 같은 날, 두 사람이 신호탄을 날렸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세연 한국당 의원. 비슷한 듯 다른, 다른 듯 비슷한 두 인사가 ‘출사표(出師表)’ 대신 ‘불출마’를 던지면서다.

임종석과 김세연은 중진이지만 젊다. 3선의 김세연은 한국당 내에서 유연한 인물로 꼽힌다. 합리적이고 폭이 넓다. 임종석은 ‘확장’을 상징한다. ‘2017년 문재인 캠프’ ‘문재인 정부 첫 비서실장’ 등 내용이 보여준다.

둘 다 진영 내 소리 대신 진영 밖 흐름과 호흡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불출마는 의도치 않게 서로를 보완해준다.

#두 사람의 글은 다르다. 김세연의 ‘불출마 선언문’은 길다. 글이자 말인데 강하고 매우 세다.

자신이 몸담은 당을 향해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해체를 외친다. “수명을 다했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비호감 정도가 역대급 1위” 등 표현이 거침없다. ‘네거티브’ 메시지만 가득하다지만 네거티브 외에 다른 내용을 담기엔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 고인 물이 썩고 있기에 밖을 볼 겨를이 없다.

방향은 철저히 ‘내부’를 향한다. 타깃도 명확하다. 황교안 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름도 직접 거론하며 불출마를 촉구한다. 분명한 메시지이기에 호불호가 갈린다. 당장 “먹던 우물에 침 뱉는 격” “좀비 당에 왜 다시 왔냐” 등 반박이 터져나온다.

그래도 김세연은 말을 이어간다. 이 길만이 살 길이란 믿음에서다.

#임종석의 페이스북 글은 짧다. 글자수로 500자 남짓이다. 김세연 선언문(5100자)의 1/10 정도다. 직접적 표현은 없다. 정치적으로 읽힐, 우회적 표현조차 담지 않았다.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라는 문구로 해석할 여지만 둔다. 열린 표현으로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든다. 담백한 글은 철저히 ‘미래’를 향한다.

타깃 대신 소명을 밝힌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 번영’과 함께 ‘통일 운동’을 적는다. 네거티브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으로 더 깊이 찌른다. 불출마, 사퇴 등 정치적 언어가 아닌 ‘소명’을 말하기에 묵직하다.

남은 이들을 ‘잔챙이’로 만든다. 임종석은 말을 하지 않는다. 글에 대한 추가 설명도, 의미 부여도 없다. 입을 여는 순간 메시지가 ‘과거’와 ‘내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임종석의 글과 김세연의 말이 같은 날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절실함이 만든 타이밍이다. 새 흐름, 새 국면으로의 진입이다. 문제는 여당과 제1야당이 절박함과 해법을 공유할 지 여부다.

김세연은 대놓고 말을 했기에 문제 속에 이미 답이 있다. 치열한 내부 투쟁 속 황교안·나경원의 ‘백의종군’ 선언이 나오면 여당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란 성이 무너지면 새 집을 짓기 더 편하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누구도 가려 하지 않는다. 성벽을 허무는 것만큼 두려운 게 없다. 당 주류와 중진들은 오히려 김세연에게 분노한다. 창조적 파괴 아닌 파괴적 파괴가 한국당의 현주소다.

‘던지고 가버린’ 임종석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도미노’를 가능케 한다. 도도한 물결에 밀려가는 ‘아름다운 퇴장’을 만드는 그림이다. 물론 여당은 조심스럽다. 헤매는 한국당을 보면서 ‘현역 물갈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모든 패배는 작은 방심에서 시작된다. 열린우리당 때 트라우마가 ‘원팀’ ‘단결’을 만들지만 ‘획일’은 소통과 공감을 낮춘다. 도미노가 없으면 확장도 기대할 수 없다. 답은 뻔하다. 비우고 새로 채우면 이긴다. 그리고 ‘누가’ 비워야 하는지도 모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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