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3당 합당' 30년

[the300]

박재범 기자 l 2020.01.21 04:25
# 1990년 1월22일. 대통령 노태우가 마이크 앞에 선다. 노태우 오른편엔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왼편엔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나란히 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노태우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김영삼이 “구국의 결단”이라고 외친 ‘3당 합당’이다. 그 ‘야합(野合)’은 한국 정치를 변질, 왜곡시킨다.

1988년 총선 때 만들어진 1여3야의 다당 체제는 양당제로 바뀐다. 거대여당(217석)을 만든 ‘보수대연합’은 30년 보수 우위 구도의 시발점이 된다.

지역 구도는 악화·심화된다.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의 연대는 ‘영남대연합’으로 ‘호남 고립화’를 낳는다.

이 구도와 흐름이 만들어진 지 벌써 30년이다. 그 기간 갈라졌고 대립하고 싸웠다. PK 지역에서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는데 꼬박 한 세대가 걸렸다. 그나마 다시 돌아갈 판이다.

# ‘3당 합당’은 3인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다. 노태우는 국정운영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권위주의 세력에서 벗어나 민주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체질 개선’이었다. 노태우는 김영삼과 손을 잡으며 전두환과 나름 ‘단절’한다.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말로 정리된다. 만년 꼴찌가 예정된 김종필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세 세력은 긴장, 견제, 협력 속 보수 체제를 공고히 한다. 민주계가 민정계를 밀어냈지만 이회창 총재 후 구도가 조금 달라진다. 자유와 개혁의 목소리가 줄어들면서다.

그리고 이회창이 3당합당에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대했던 노무현에게 패한 것은 상징적이다. 건전한 투쟁은 ‘다양성’과 ‘개혁’ 이미지를 만들지만 반대는 계파 갈등으로 비쳐 몰락을 낳는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진단은 의미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 정당 주도권이 자유주의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보수는 옛 명성이 그립다. 이전 체제의 복원을 꿈꾼다. 한지붕에 살던 자칭 보수들의 연합이 깨졌기에 한지붕 아래 모이면 된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를 보며 희망을 키운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현실, 현주소는 모른다. 시대가 묻는 질문을 애써 외면한다. 우선 ‘단절’이다.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은 탄핵을 정면돌파하지 못한다.

태극기·기독교의 줄을 놓지도, 끊지도 못한다. 그 속에서 허우적댄다. 제1 야당 대표다운 정치적 상상력은 기대할 수 없다.

‘호랑이’를 잡고 싶은 듯한 안철수는 ‘호랑이굴’이 어딘지도 모른 채 헤맨다. ‘외유→귀국→현충탑 참배→5·18 묘역 참배’에서 미래를 읽기 힘들다. 귀국장의 ‘큰절’, ‘지지자 동원’부터 ‘올드’하다.

개혁과 보수를 되풀이하는 유승민도 슬슬 지겨워진다. ‘반(反) 문재인’ 외 뚜렷한 가치와 방향이 없기에 느껴지는 공허함이다.

‘자칭’ 보수 지도자라면 30년의 보수대연합 붕괴 후 보수의 갈 길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 보수대연합에 맞서 진보적 이념을 강화하며 근육을 키워온 민주당은 그 보수대연합을 대체했다.

민주당이 주류가 된, 보수 우위를 빼앗긴, 3당 합당 30년이 된, 2020년 현재 보수통합의 주체는 어찌됐든 이들 3인이다. 도전자 입장이 된 보수의 훈련양은 어느 정도일까. 답은 비관적이다.

‘3인 통합’을 하든, 30년만에 ‘3당 합당 2’가 이뤄지든,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을 것 같다. 수명을 다한 ‘3당 합당’만한 상상력도 발휘할 수 없는 보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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