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차명계좌 처벌…지하경제양성화 날개단다

실소유주, 명의자, 금융회사 모두 처벌 가능…"탈세 근절 효과 기대"

김세관 기자 l 2014.04.30 19:21
#지방에서 한의원을 운영 중인 30대 중반 의사 A씨는 매년 6000만원 가량의 소득세를 신고하는 고소득자다. 그러나 6000만원의 세금은 내야할 금액의 일부에 불과하다. A씨는 현금영수증을 끊지 않은 매출을 장부에 올리지 않고 친척 명의 통장에 넣어 관리하는 방식으로 탈세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과세당국에 의해 차명계좌가 들통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지 않다. 차명계좌의 명의자들이 '차명'에 동의했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는 적발돼도 밀린 세금과 가산세 일부만 내고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A씨의 생각처럼 차명계자가 탈세의 필수 아이템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30일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를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할 경우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 금융기관 모두를 처벌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금융실명제법은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차명계좌를 개설했을 때만 처벌한다. 하지만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합의를 했다면 크게 제재하지 않는다. 매출을 누락해 벌어들인 이익에 대한 세금과 가산세를 내면 다시 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동의를 했다고 해도 불법적인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한 경우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 은행 담당자 등 차명계좌 개설의 3주체가 모두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차명계좌 실소유주와 이를 알선한 금융회사 관련자 등에게 건당 3000만원이 부과된다.

지난해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3000억원의 재산을 빼돌려 정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경우 500여개의 차명계좌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정된 법에 의하면 이 회장은 징역과 벌금 외에 150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다만, 동창회나 종친회 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소위 '선의'의 차명계좌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울러 이번에 정무위를 통과한 금융실명제법에는 차명거래를 하면 해당 계좌의 금액이 명의자에게 증여됐다고 확신하는 증여의제가 아닌 법정에서의 다툼이 가능한 증여추정 원칙이 적용됐다. 실소유자가 차명재산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된 채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차명계좌를 통해 탈세 등 불법을 자행한 관행에 대한 철퇴 차원을 넘어 예방주사 효과도 기대된다. 대기업 및 대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등 4대 중점과제를 선정하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 중인 국세청 입장 최고의 호재란 분석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우리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로 금융실명제 강화를 들고 나온 바가 있었다"며 "현행 법으로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탈세 근절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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