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최전방 병기' 조원진…박근혜·김우중이 주목한 이유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 사용설명서

박다해 기자 l 2015.03.17 05:58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우리는 일단 판을 다 보여줬고… 다음 주 지나고 나면 대략적인 연금개혁 방향이라든지 각자의 퍼즐모양은 나올 것 같다." (13일, 주요당직자 회의)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어려운 협상이 있을 때마다 당의 전면에 나선다.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와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공동위원장으로서 정부와 야당, 공무원노조 사이의 협상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여당 간사를 맡았다. 초선이던 18대 국회 때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간사를 맡는가 하면 19대 국회에서는 정보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간사, 정책위부의장을 연이어 맡고 있다.

굵직한 협상자리마다 선봉에 서며 '재선'을 뛰어넘는 무게감을 과시하는 그다.

[그는 →"힘든건 내 몫" 대구사나이]

"폼나고 좋은 일은 다른 의원 다 시키시고 딱 생각했을 때 '골치아프다'하는 일은 제게 주면 제가 하겠다"

조원진 의원은 18대 국회에 입성한 직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이같이 말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그래도 되겠습니까"라며 딱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조 의원은 "그 때 그 말이 족쇄가 된 셈"이라고 했다. 그는 19대 대선에서도 전략기획본부장과 불법선거감시단장을 맡아 야당과의 전쟁에서 선봉에 나서기도 했다. 

"일에 대해선 겁을 안낸다"는 그는 영락없는 '대구 사나이'다. 대구 토박이인 그의 정치 인생은 만 28살에 시작됐다. 13대 총선에 출마한 황병태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여의도에 첫발을 디딘 것. 조 의원은 당시 강남의 압구정동, 신사동 등을 지역구로 출마한 황 전 의원의 지역관리를 맡아 그의 당선을 도왔다.

15대 총선까지 황병태 전 의원을 보좌하던 그는 1998년 15대 보궐 선거에서 직접 정치에 뛰어든다. "대중연설만큼은 자신있었다"던 그지만 고향 대구에서 출마했던 15대 보궐선거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연이어 탈락하며 쓴 맛을 봤다. 당시 조 의원은 무소속의 한계를 느꼈다. 

조 의원은 이후 대우그룹 부장으로서 중국 베이징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2001년 중국으로 돌아가 무역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SK아스팔트 원료를 추운 동북지방에 공급하고 중국 길림의 옥수수를 처음으로 한국 사료협회에 공급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이기도 했다. 

그를 다시 여의도로 이끈 것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표다. 조 의원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표가 패배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승복에 마음을 다잡는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결국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한 그는 '친박연대' 소속으로 대구 달서구에 출마, '2전 3기'에 성공한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키워드→최전방 협상가]

"대세에 지장없는 것은 다 줘야지. 지켜야 할 것은 다 지키고 나머지는 다 양보한다. 그게 협상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다. 내 것을 지키고 상대 것을 뺏겠다고 하면 그게 되나.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다 보여줘야 미안해서라도 좀 보여줄 거 아닌가." 

조원진 의원에게 자신만의 협상 '스킬'을 묻자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당내 최전방 협상가로 나서는 그다. 대우그룹 최연소 부장이자 직접 기업을 이끌었던 사업가 출신답게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스킬' 덕분에 함께 협상하는 파트너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 의원은 "18대 환노위 간사시절 비정규직법 등을 단독 상정하기도 했지만 추미애 의원,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야당 의원인 강기정, 정청래, 임수경, 김현 의원하고도 다 친하다"고 말했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도 협상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조 의원은 "긍정적인 마인드는 하늘을 쳐다보고 정면을 주시하는 것이지만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경우 땅밖에 안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아무리 어려울 때도 부정적으로 안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돌파구의 틈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2주가 채 남지 않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논의 역시 시한연장 없이 결론이 날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키워드→ 중국]

조원진 의원은 당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그와 중국의 인연은 1993년 대우그룹 부장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병태 전 의원이 14대 총선에서 탈락한 직후 조 의원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난다. 조 의원과의 대화에서 감명을 받은 김 회장은 그에게 대우그룹 사장단 앞에서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인연으로 조 의원은 만32세에 대우그룹 자동차기획팀 최연소 부장으로 임명된다. 자동차를 비롯해 전반적인 사회, 정치 상황 등에 대해 리포트를 작성, 김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었다. 2~3개월이 지난 후 조 의원은 김 회장에게 중국으로 진출하겠다고 건의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의 능력있는 사람들을 만나 로비스트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조 의원은 그 후 9년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의 부총리, 장관의 비서 등 고위급 간부를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다진다. 당시 조 의원은 대우그룹에서 일할 조선족 학생들을 현지에서 선발해 한국에서 연수를 받게한 뒤 다시 중국에 파견하는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아직 기업 내 해외 연수생제도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다.

조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낙마한 뒤 다시 중국을 찾는다. 2001년 중국에 돌아간 그는 한·중 무역 컨설팅 회사를 차린 뒤 4년 여간 사업을 이끌었다. 대우그룹 부장 시절 사귀었던 현지의 친구들이 그의 자원이 돼줬다.

그는 지금도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의 젊은 인재가 중국 땅에서 활로를 터야 국민소득 4만불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20세에서 45세사이에 중국말을 할 수 있는 인재가 150만명이 있다. 이들이 중국에서 창업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비용을 지원해준다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일자리 부족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문제의 돌파구는 결국 중국이라고 본다."

[그의 대표 법안은]

조원진 의원은 대표 법안 가운데 하나는 '맞춤형 화재 안전법'(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해 발생한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의 교훈에서 비롯됐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에도 선정된 이 개정안은 △건축물 이용자 및 위험 특성을 소방시설 설치 기준에 반영 △소방방재청 화재안전정책기본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았다.

기존의 화재 관련 법안은 안전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병원·노래방 등 개별 사업장의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사후약방문'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각 시설물 특성에 따른 '맞춤형'기준이 정착돼 화재 예방 기능이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관 검색어→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

조원진 의원은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여야 간사를 맡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함께 간사를 맡은데 이어 벌써 두번째 '짝꿍'인 셈이다. 

두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지방재정법'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지방채 발행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재정법은 정청래 의원의 완강한 반대로 안행위 법안소위에서 계류됐다. 당시 조 의원이 법안소위에서 지방재정법 안건을 상정하자 정 의원은 이에 반발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막후에선 누구보다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는 사이다. 조 의원은 인터뷰가 진행된 13일 "안그래도 전날(12일) 정청래 의원이 4월에 다시 지방재정법을 다루자고 하더라"며 "단서조항 등을 일부 달아야되겠지만 본격 논의부터 처리까지 긍정적인 시그널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임위원회에서는 안건을 두고 대립하지만 누구보다 친한 파트너로 지낸다는 설명이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출마했을 때 조 의원이 후원금을 냈다는 후문도 있다. 

[이 한장의 사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왼쪽)과 조원진 의원. 1992년 처음 만난 김우중 회장은 조원진 의원에게 최연소 부장으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조 의원의 '중국 사랑'은 이 때 시작됐다/ 사진제공=조원진 의원실



[요! 주의→'막말'과 '선플'사이]

조원진 의원은 2014년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을 당시 세월호 유족들에게 '막말'을 했다며 집중포화를 받았다. 당시 기관보고를 받던 도중 세월호 유가족에게 "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것이 발단. 국조 정상화를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를 조류인플루엔자(AI)에 비유한 것도 논란이 됐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청와대가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하자 조 의원은 이에 반발하며 "AI와 산불 등 재난에 대통령이 '수습'을 지시했다고 컨트롤타워로 볼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 의원은 같은 해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조 의원은 "자신의 말에 책임성을 갖고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발언이 나온 영상을 일일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그는 세월호 특위 간사를 맡았을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당시의 '막말'논란에 대해선 "억울한 점이 있다"며 "자신의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아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직설'을 조심하지 않으면 또다시 집중포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진심'보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다.

 

[프로필]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영남대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 △제 18·19대 국회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前) △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前)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불법선거감시단장 (前) △국회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前) △국회 한·중 의회간 정기교류체제 간사장 △국회 한·중 정치경제포럼 대표의원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새누리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前)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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