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번호 국민공천? 그게 뭐예요?"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총선전략으로 분열된 英 자유당,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이상배 기자 l 2015.10.05 06:01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진=뉴스1


"안심번호? 안심전화? 그게 뭐예요?" 

최근 한 모임에서 지인이 한 말이다. 요즘 논란이 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화제가 옮겨가면서다. 그러면서 지인이 덧붙인 말. "한마디로 국회의원 후보 뽑는 거 아녜요? 우리야 선거에서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되지, 후보 뽑는 것까지 뭘…."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의 정면충돌까지 야기한 문제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갈등은 자신의 삶과는 동 떨어진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싸움이 길어져 봐야 국민들 보기에 좋을 게 없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당청갈등은 한마디로 '여권내 총선전략 논쟁'이다. 내년 4월 총선에 내세울 국회의원 후보를 순수하게 국민 여론조사로만 뽑을 지, 일부 전략공천도 활용해 낙점할 지가 싸움의 핵심이다. 물론 기저에는 청와대의 공천 개입을 차단하고 비박계 우위의 당내 구도를 유지하려는 김 대표와 전략공천을 통한 친박계 확장을 원하는 청와대와 친박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지만, 명분은 어디까지나 '총선 승리'다.

양쪽 모두 '총선 압승'을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의지가 강할수록 '총선 압승'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분열된 정당은 선거에서 불리하다'는 당연한 명제에 입각해서다.

총선전략을 둘러싼 분열로 총선에서 연이어 패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몰락의 길로 들어서 끝내 사라진 정당이 영국 자유당이다. 보수당과 함께 영국 양당정치를 이끌었던 자유당이 분열되기 시작한 건 1886년 자유당 당수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아일랜드 독립' 법안을 추진하면서였다.


1885년 총선에서 패한 글래드스턴은 당시 총선에서 '아일랜드 자치주의자'들의 의석이 86석으로 크게 늘자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다음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아일랜드 독립'을 핵심 아젠다로 내걸었다. 그러자 '아일랜드 독립'에 반대하던 자유당 의원들이 '연합파 자유당'이라는 별도의 세력을 꾸려 글래드스턴에 맞섰다. 급기야 이들은 이후 선거에서 경쟁자인 보수당과 손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래드스턴은 끝까지 '아일랜드 독립 지지'라는 자신의 총선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900년까지 치러진 4차례의 총선에서 자유당은 1892년 한차례만 빼고 모두 보수당에 패했다. 당시 보수당의 당수였던 솔즈베리 후작은 "글래드스턴의 존재야말로 보수당의 가장 큰 힘의 원천"이라고 비꼬았을 정도다. 집권에 번번이 실패한 자유당은 1900년 출범한 노동당에 밀리기 시작해 1922년엔 '제1야당' 지위까지 뺏기더니 결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의 입장 모두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각각의 '방정식'으로 총선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당 대표로서 '전략공천'을 통해 곳곳에 '젊은 피'를 투입, 탄핵 열풍으로 '참패' 위기에 처했던 당을 구해냈다. 김 대표는 전략공천을 배제한 여론조사 경선으로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완승을 거뒀다.

'경험칙'에 근거해 직관적으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을 심리학에서 '휴리스틱스'(Heuristics)라고 한다. 복잡한 상황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과거 성공 경험에 사로잡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경영학에선 '성공함정'(Success Trap)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성공경험도 영원한 '성공 방정식'이 될 순 없다.

영국 자유당의 사례에서 보듯 총선전략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질 때 득을 보는 건 상대정당 뿐이다. 논란의 핵심인 '전략공천'에 대해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불러 담판을 짓는 건 어떨까? 박 대통령이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간곡히 요청하는 공천까지 김 대표가 과연 거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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