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가 되살린 '휴대전화 감청법'…국정원 '원죄'에 발목

[the300]'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미방위 법안소위 상정됐지만 피상적 논의 그쳐

황보람 기자 l 2015.11.18 18:28

프랑스 파리에서 최소 130여명 이상이 숨진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중구 N서울타워에 희생자들을 추도하기 위해 프랑스 국기색의 조명을 비추고 있다. /뉴스1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던 각종 '통신비밀보호법'이 파리 테러를 계기로 되살아났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의 신뢰성 문제 공방으로 피상적인 논의 끝에 법안통과에 제동이 걸렸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국가수사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담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10건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한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이날 소위에서는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일명 '휴대전화 감청 허용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해당 법안은 국정원 및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도록 통로를 열어주는 내용이다. 현재 유선전화의 감청은 합법적 허용대상이지만 휴대전화 감청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이밖에도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도입해 논란이 된 해킹프로그램(RCS :원격제어장치) 등 소프트웨어도 감청장비로 분류하는 내용의 통비법도 상정돼 논의됐다.


하지만 법안소위는 '국정원의 과거 행태'에 초점이 맞춰지며 진지한 논의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초 해당 법안은 야당 내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법안심사 대상에서 일찍이 제외된 바 있다. 파리 테러를 계기로 새누리당이 '대테러방지법'을 추진하면서 법안소위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애초에 '합의' 가능성이 낮은 사안이었다. 미방위에서는 '대테러방지법'을 논의한다는 앞선 여야 지도부 합의에 따라 형식적으로 법안심사를 진행했다.


박민식 의원은 "문명 국가 중에 휴대전화의 합법 감청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없다"며 "사생활을 침해하자는 게 아니라 정보기관이 제대로 정보수집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정원이 과거에 안좋은 일에 연루됐던 원죄 때문에 이제와서 야당 측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테러 위험이 워낙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흔쾌히 처리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미방위 야당 간사인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그동안 상임위에서 끊임없이 야당 측 반대 의견을 냈다"며 "토론은 하되 통과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야당 미방위 위원들은 휴대전화 감청이 테러 방지에 효용이 있느냐는 문제제기와 함께 당초 박 의원안이 '내국인 범죄 정보 수집용'으로 발의된 만큼 이번 테러 사건에 편승해 어부지리로 처리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프랑스는 휴대전화 감청이 보장돼 있지만 테러를 못 막았다"며 "휴대전화 감청이 허용되면 테러를 막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못막는다는 이분법은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실제로 이번 파리 테러의 주동자인 IS는 텔레그램 등 암호화된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파리 테러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논의에서는 끊임없이 국정원의 신뢰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날 정보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국정원이 "우리나라에 시리아 난민 200명이 들어와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파리 테러의 범인이 시리아 난민으로 위장해 프랑스에 들어간 것을 악용해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여론몰이를 한 것이라는 평가다. 


한편 이날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을 휴대전화 감청 수사대상에서 제외하고 감청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하자는 조율된 개정안을 제안했지만 이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 의원은 "테러 사건 때문에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토론하자는 것은 국민을 두번 모욕하는 일"이라며 "국정원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그것을 불식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논의하자"고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전병헌 새정치연합 의원은 "감청 허용법이 없더라도 국정원은 이미 RCS 사건으로 해킹앱을 들여와 감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 드러났고, 수사는 유야무야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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