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에서 '부담'으로..공천 배제된 윤상현

[the300]"김무성 죽여" 망언 친박계 정치적 부담..유승민 심사 겹치며 구제 실패

우경희 기자 l 2016.03.15 21:00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한 막말·욕설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도착하기 전 회의실을 빠져나가 오늘도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2016.3.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결국 친박(친박근혜)계도 부담을 털어내고 가는 방식을 택한 것 아니겠느냐." 한 친박계 의원이 윤상현 의원(인천남구을)의 컷오프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김무성 당대표에 대해 "솎아내야 한다, 죽여버려" 등 극언을 한지 17일만, 이 사실이 보도된지는 7일만이다. 

친박실세를 넘어 진박(진실한친박)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낸 윤 의원이지만 결국 컷오프를 피하지 못했다.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망언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친박 진영에 큰 정치적 부담을 줬다. 여기에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부담이 겹치며 결국 윤 의원에 대한 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윤 의원의 설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8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 빈소에서 이른바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을 언급해 공천룰 관련 갈등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당시 유 의원을 겨냥해 "TK(대구경북)60%를 물갈이해야 이길 수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상주 앞에서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김 대표를 향한 취중망언은 결정타가 됐다. 수세에 몰렸던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윤 의원의 실언을 빌미로 공세를 높였다. 김 대표는 윤 의원을 피하며 사과를 받지 않았다. 날로 높아지는 비난여론 속에서 20대 총선에서 다수당 확보가 절박했던 친박(친박근혜)계는 대단한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윤 의원이 자타공인 친박 핵심이라는 점이 부담을 더했다. 정치인생의 대부분이 그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로 2002년 이회창 대선후보의 정책특보를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 윤 의원은 한국과 미국으로 나뉘어 살던 아내와 2005년 이혼한 이후 노선을 바꾼다.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조직기획단장을 맡은 것이다. 

2013년 원내수석부대표와 2015년에는 사무총장을 지내며 이른바 친박 핵심으로 뛰었다.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당시 큰 소리로 대통령을 부르자 박 대통령이 환한 미소로 답하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다. 

하지만 윤 의원의 존재는 친박에 지속적인 부담이기도 했다. 설화 없고 분란 없는 의원이 거의 없지만 윤 의원은 여당 현역 중 독보적이다. 국회 입성 이전인 2004년 4월 17대 총선 당시 낙선하자 열린우리당 소속 당선자의 세금체납을 물고늘어지며 당선 무효소송을 냈다가 패배, '문제아 경력'의 막을 올렸다.  

2013년에는 딸이 전 장인인 전 전 대통령의 차명 은닉자산을 상속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재산고지를 거부하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같은 해 9월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의혹 증거논란에서 성급하게 "혈액형 확인"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같은 해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내면서는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에 대해 국정원을 옹호하고 수사기밀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NLL(북방한계선) 발언과 관련해 옹호하는 듯 했다가 비난으로 돌아서는 등 입장을 번복해 주변을 의아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결정적 망언으로 20대 출마가 좌절된 윤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친박핵심을 자부하던 그가 대통령과 당을 등지고 출마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의원은 "백의종군을 선언한 후 총선을 거치며 만약 친박이 다수를 차지하면 재보선 등을 통한 구제가 시도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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