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에린 브로코비치 등장? 징벌적 손해배상 해외는

[the300][런치리포트-징벌적 손배, 득과 실]③과도한 배상액 제한추세, 배액배상제는 '3배' 명시

김성휘 기자 l 2016.06.09 05:52
각 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머니투데이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소도시 힝클리 주민들은 중금속 배출로 수질을 오염시킨 전력회사 PG&E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에 참여한 600여명 주민에게 합계 3억33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선고돼 미국이 떠들썩했다. 소송을 이끈 실존인물이 에린 브로코비치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2000)가 이 사건을 다뤘다. 징벌적 손배는 실손해액보다 많은 배상금을 가해자에게 물려 억지와 처벌 효과를 키우기 위한 제도다. 미국 사례가 주로 알려져 있다.

8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외에도 영국, 대만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아무 범죄에나 과도한 배상액을 물리는 건 아니다. 실손해의 수십~수백배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또한 배상액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재판부와 배심원 재량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추세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이름엔 두 가지 개념이 섞여 있다. 하나는 특정한 법률에 국한하지 않고 고의적 악의적 불법행위에 무거운 배상액을 정할 수 있는 글자 그대로의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다. 영화의 소재가 된 PG&E 소송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법정 배액배상제(statutory multiple damages)는 독점금지법·공정거래법과 같은 개별 법률에 규정되고, 위반 행위에 2배나 3배 등 특정배수로 배상액을 정한다. 우리나라 하도급법 등 공정거래 관련법에 도입했고,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추가 도입이 논의되는 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 부르고는 있지만 엄밀히 배액배상제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엔 두 가지 모두 도입돼 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각 주 규정 차이를 극복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기준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려면 △법률상 명시적으로 징벌적 손배가 인정될 것 △악의적인 권리침해를 입증할 명백하고 확정적 증거가 있을 것 △처벌이나 유사 행위 억지를 위해 징벌적 배상이 필요할 것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실손해액 10배가 넘는 배상액은 헌법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른바 '한자릿수 배수' 판결사례도 있다. 배상액이 지나치게 커지면 원고(피해자)에게 우발적인 이익을 과하게 줄 수 있다는 이유다.

개별법률상 배액(3배) 배상제는 연방 독점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여기서도 카르텔(독점) 자진신고를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자진신고자는 민사소송에서 3배가 아니라 실손해액만 배상토록 하는 예외를 두고 있다.

영국은 경찰 등 공무원이 강압적, 자의적, 위헌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불법체포나 불법구금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게 한다. 영국 의회는 추가적으로 징벌적 손배를 명문화한 입법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법률 체계는 대륙법(독일·프랑스·한국)과 영미법으로 나뉜다. 징벌적 손배 개념은 주로 영미법 국가에 해당한다.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대륙법계이며 민법상 실손해 배상원칙을 가진다. 단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공평교역법, 소비자보호법 등에 배액배상제를 두고 있다. 공평교역법은 이 법을 고의적으로 위반한 경우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법원이 배상액을 정할 수 있게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징벌적 손배 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조물책임법 등 관련 법규에 징벌적 손배가 도입되면 한국판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물론 배액배상제가 적용된다면 배상액은 실손해액의 3배 이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해외에도 소비자보호와 공정거래법 등에 3배 배상제가 있다"며 "제조물 책임법이나 소비자기본법상 이를 도입한다면 큰 논란 없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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