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 안민석 "다음 목표는 '남북문화체육 교류'"

[the300][런치리포트-국회 상임위원장 사용설명서]②안민석 국회 문화체육위원장…오산에서 내리 4선 '어느덧 중진'

강주헌 기자 l 2018.09.27 04:51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위원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대학교수,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는 2004년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덕을 봤다. 경기 오산에서만 내리 4선을 지낸 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적폐청산 전문가' '폭로 전문가'로 비칠 법 하지만 20대 후반기 국회에선 문체위원장을 맡아 남북 문화체육교류의 중심축을 자임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1966년 경남 의령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자신의 오랜 정치 지역구가 된 오산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이후 오산중학교과 수원 수성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내내 학업 성적 상위권을 유지하면서도 육상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할 만큼 체육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시절 전공으로 삼았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를 역임하며 학생운동을 했다. 오산에서 진보적 청년단체인 '닷옴'을 결성해 활동했고 경찰 수배로 도피 생활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 졸업 후 교직 생활을 꿈꿨지만 학생운동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1988년 단돈 70만원을 갖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병원에서 시체를 닦고 피자배달을 하는 등 학비를 벌며 고생한 끝에 결국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 학계에 몸을 담으며 시민 운동을 했다. 오산에서 삼성전자 오산천 폐유유출사건·독산성세마대 골프장건설 반대운동 등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에는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에 임용됐다. 대학교수와 시민운동을 병행해오던 그는 어린이 9명이 사망한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건을 겪었다. 엘리트 중심 학교체육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열악한 합숙소를 방치한 게 원인이었다.

 

안 위원장은 "정치를 통해 낡은 관행과 모순을 변화시키겠다"는 각오로 2004년 총선에 나섰다. 14년의 의정활동 동안 국회 문화, 교육 관련 상임위를 맡아 자신의 전문분야인 체육과 연계해 지자체 및 학교복합시설 정책 마련에 힘썼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는 국정조사위원으로 박근혜 정부의 비리를 캐는 데 앞장서며 전국구 스타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안 위원장의 다음 목표는 남북문화체육 교류에 중추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최근 민주당 남북문화체육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안 위원장은 "국회 상임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발동해서 2032년 올림픽 남북공동 유치, 궁예궁터 복원 프로젝트 성공에 일조하겠다"며 "나의 꿈일 뿐만 아니라 정부, 국민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20대 국회 전반기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약했다.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학교체육선진화를 위한 촉구 결의안 등 발의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20대 국회에서 안 위원장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33건으로 이중 수정가결 1건, 대안반영 1건 등 총 2건이 처리됐다.

 

지난 3월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 억지로 추가 수업료를 낼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했다. 학위취득 요건을 채운 학생이 졸업유예를 했을 때 대학이 의무적으로 수강신청을 규정해 학비부담이 늘어나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반영했다. 개정안은 졸업유예자의 근거를 신설하고 수강 의무화를 금지했다.

 

학교체육선진화 촉구 결의안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이원화'로 생기는 문제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넓은 학생선수 풀을 위해 학교스포츠클럽과 엘리트 운동부의 연계방안 마련을 강조했다. 또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해 정부·지자체가 학교체육관 100% 보급을 추진하고, 학교운동장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