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의 '말할 수 없는 출생'…혼외자 꼬리표 삭제法

[the300][런치리포트-이주의법안]①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 '투명인간 아이들 방지법'

조현욱 보좌관(금태섭의원실), 정리=김하늬 기자 l 2019.02.08 04:00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에서 18년만에 아빠의 존재를 알게된 고등학생 ‘혜나’. 전교 1등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친구 ‘예서’의 아빠가 사실은 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복수를 다짐한다.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혜나의 비극은 어쩌면 출생신고서의 ‘혼인외 출생자’라는 꼬리표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누구나 주변에 한 명쯤은 있다. ‘실제 나이와 주민등록상 나이가 다르다’ 거나 ‘생일이 양력이 아닌 음력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 태어난 날과 출생 기록이 다른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의사, 조산사 또는 분만에 관여한 사람이 작성한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한다. 출생신고와 함께 아이는 공식적인 사회 일원이 된다. 주민등록번호가 생기고 가족관계등록부가 만들어진다. 출생신고는 국적 보유 추정력까지 부여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는셈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서다. 뒤늦은 출생신고로 가족관계가 부실하게 기록되고 출생연월일이 정확하지 않은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록 없는 아이들은 성장할수록 아동학대나 인신 매매, 불법 입양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에게만 의무를 지우는 출생신고 제도는 필연적으로 출생신고 누락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투명인간 아이들’을 만드는 또 하나의 문제는 결혼 중심의 신고제도라는 점이다. 미혼 부모는 출생신고를 할 때 반드시 ‘혼인 외의 출생자’ 표시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 소외된 곳에는 임신 중절이나 비혼 출산은 금지되고 출생이라는 선택지만 허용된 여성들이 있다. 아이에겐 태어나자마자 혼외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은 ‘투명인간 아이들 방지법’이다. 비혼이나 동거 같이 다양한 삶이 늘어나면서 혼인 외 출생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현행법은 혼인 외 출생자의 경우 생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미혼부는 신고할 수도 없다. 개정안은 생모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출생신고를 못할 수 있으므로 먼저 혼인 중 출생과 혼인 외 출생을 구분하지 말고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또 아이의 출생 신고를 부나 모가 아닌, 의사나 조산사가 출생증명서를 시·읍·면에 직접 보내도록 하고 의무 위반시 과태료를 물린다. 아이의 탄생을 국가에 공적으로 알리는 일을 가족관계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해 온 관습을 뛰어넘는 취지다. 출생 신고 누락으로 인한 아동인권 침해도 방지할 수 있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2017년 전국에 출생신고된 35만7771명 중 혼인 외 출생은 6951명이었다. 혼외자는 미혼모 뿐 아니라 현재 혼인 중에 있으나 부 또는 처가 아닌 사람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포함된다. 지난 10년간 전체 출생신고 아동 중 평균적으로 2% 정도가 혼인 외 출생자였다. 가장 많았던 2012년에는 1만 명이 넘었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는 현재 사회에서 혼외자를 따로 구분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미혼부모에 대한 통계조사나 미혼부모 예방, 부녀상담, 시설보호, 입양 등 미혼부모에 대한 지원정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 법은 타당한가= 임신이나 출산 사실을 드러낼 수도 없는 사람에게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것은 친생부모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고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현재 관악과 군포에서 베이비박스가 운영되고 있다. 매년 약 200명의 아동이 유기된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임신이나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거나 양육이 어려운 임산부를 위해 비밀출산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모성의 자유롭고 안전한 출산의 권리와 영아의 생명권 보호,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찬성 논리와 아동유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아동의 부모를 알권리가 침해된다는 반대 논리가 팽팽하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등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부여하는 것 외에도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출생사실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출생신고제도만 운영한다.

반대론자들은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 등이 의료기관에서 출산을 기피할 것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국가가 미혼모 등의 의사와 무관하게 출생기록을 관리하면 비인가기관, 해외원정 등을 통해 불법적인 출산이나 전문조력인의 도움 없는 자가분만 할 가능성이 높아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통보제도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아동의 불법매매나 학대를 예방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명시된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한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이같은 반대론을 들며 신중검토 입장이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든 아동이 빠짐없이 출생신고가 되도록 하되 미혼모, 혼외임신자, 미등록 외국인, 약물중독자 등이 임신사실을 안 때로부터 자녀를 출산할 때까지 전 과정 동안 국가가 심리상담, 의료지원, 법률지원, 쉼터제공 등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2017년 통계청의 출생 장소별 통계에 따르면 출생아의 99.5%(35만6070명)가 병원에서 태어났다.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통보제도가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 발생과 변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데이터를 공적으로 관리하는데 실효성이 있다는 근거다. 

가족관계증명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능하다.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필요로 할 때 원하는 사항을 국가가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대국민서비스다. 

가족관계증명서 내 혼외자 표기가 삭제된다면 다음 단계는 친생부모의 비밀 출산 의사를 존중해 담당기관이 익명성을 보장하고 자녀 출생등록을 해주는 ‘비밀출산제’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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