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소년' 위성곤 "4월, 아직도 눈물을 꾹 참고있다"

[the300]'4.3 특별법 개정안' 노력 위성곤 의원이 말하는 제주 4.3

김하늬 기자 l 2019.04.03 11:13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이동훈 기자


제주도의 4월은 눈물이다


노랗게 흐드러진 가시리의 유채꽃밭도, 한라산 마방목지를 뛰노는 조랑말도, 4월의 봄을 오롯이 전할 수 없다. 제주도의 봄은 '4.3 추념'으로 시작해서다.

'제주 소년' 위성곤은 초등학교때 외가인 서귀포에 정착했다. 그가 기억하는 제주도는 그저 바람이 많이 부는 시골이었다. 제주의 아픔을 깨닫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뭍'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했다. 제주도가 가슴에 꽁꽁 사맨 '4.3 사건'은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한 발 늦었다. 제주도민 모두가 앓고 있는 아픔이지만 쉽사리 말 할 수 없는 상처였다. 

"아픔을 알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된 위 의원은 국회에서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다. 또 군사정권 때 이뤄진 불법 군사재판의 무효화와 명예회복, 트라우마센터 설립, 추가 진상조사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희생자와 유족을 비하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위 의원은 "국회가 도리어 역사를 폄훼하고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그동안 역사적 아픔을 알면서도 모른 척 오랜기간 방치했다. 제주도는 소외됐고, 제주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법을 고쳐 진상규명을 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3특별법이 제정되던 1999년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고 위 의원은 회고한다. 위 의원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국민 70%가 4.3 문제를 알게 되고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에 섰다"며 "법 개정을 해서 그 근거로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사과가 필요하다"

사실 '4.3 사건'은 미군정시기였던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로 시작했다. 그 후 무장봉기와 대치상황이 이어졌고, 1948년 수립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문제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제주도에 계염령을 내리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위 의원은 "미국의 사과가 필요하다. 미 군정은 그 당시 많은 자료와 정보를 가졌는데, 그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이후 남한 정부의 진상규명까지 이어지기 위한 단초다"고 강조했다.

군인과 경찰, 71주년 추념식에서 첫 유감 표명 '다행'

위 의원은 71주년을 맞는 제주 4.3추념식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군인과 경찰이 사실상 사과의 입장표명을 하겠다고 밝혀서다.

위 의원은 "국방부가 광화문 추념식 행사장에 공식 참석한다. 경찰청장도 최초로 행사장에 온다. 역사상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위 의원은 "지난달 제주지방경찰청장이 4.3평화재단을 방문해 참배하고 가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성숙해지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적극적인 사과는 어려워도, 군과 경찰은 유감을 표명할 예정이다. 역사 앞에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시작한 셈이다.

위 의원은 "책임자 처벌 문제는 진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처벌이 가능하느냐의 문제가 있고, 지금까지 4.3 진상규명하면서 책임자를 드러내긴 했지만 처벌해오지는 않았다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잘못은 밝히지만 처벌은 향후 과제로 남겨두는 방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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