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공감' 없는 정치권에 '표'도 없다

[the300][4·15 21대 총선 D-1년]<1회>20대 눈엔 '진보-보수'도 낡은 프레임…'新 흑묘백묘'가 다음 총선 키워드

이재원 기자, 조준영 기자 l 2019.04.14 18:12

편집자주 ‘4·15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계 개편 등 온갖 시나리오가 수면 밑에서 오가지만 결국 선거의 주체는 유권자인 국민이다. 정치 무관심, 외면보다 “제대로 된 일꾼을 뽑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내년 총선에서 어떤 국회의원을 뽑아야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3회에 걸쳐 보도한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2019년 대한민국 20대를 수식하는 명료한 표현이다. 넓게는 30대 초반까지를 포함한다. 좁고 높아지는 취업문에 끝을 모르고 치솟는 청년실업률에 청년들은 좌절하고 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빚이 생긴다. 취업도 늦으니 결혼은 먼 얘기다. 한 때 자조(自嘲)였던 'N포'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이젠 청년을 분노하게 만든다.

그리고 20대 국회의원. 평균 나이 55.5세. 지금 20대의 부모 뻘, 혹은 그 이상 되는 나이다. 다음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의 나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딱 1년 남은 총선, 20대의 표심 없이는 다시 국회로 돌아올 수도, 국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어렵다.

청년들도 정치가 단박에 그들의 삶을 낫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미 기대를 접은지 오래다. 그래서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공감이다. "아니다. 힘들어도 열심히 살면 된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있다"는 뼈저린 공감이다.

가장 많은 '공감력'이 필요한 것은 정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다음 총선에서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이미 정권 초기에 비해 민심의 이반이 곳곳에서 관측된다. 여기에 팍팍한 생활에 내몰린 청년들의 표심이 야당의 '경제실정 심판론'과 결합할 경우 민주당은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권에서 20대를 상대로 '비공감'의 끝을 달리는 것이 민주당이다. 여기저기서 터저나오는 발언들 속에서 20대 지지율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2월22일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이 "(20대) 이분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을 때가 10년 전부터 집권 세력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며 "그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고 답했다. 

20대 남자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당 의원들의 발언은 공감은커녕 배신감을 줬다. 20대 역시 2016년 말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함께 분노했다. 민주당과는 함께 촛불을 들었다는 동료의식이 있었는데, 이같은 비공감 발언들이 청년들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대학생 박형원씨(25)는 "민주화,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은 다 알고 있다"면서도 "당장 자소서 한 줄 채우고 취업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보수화를 운운하는 모습에서 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야권도 다르지 않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부망천'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예를 들어 서울 양천구, 목동 같은 데 살던 사람들이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며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는 지역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상대당을 비방하는 데에만 정신이 쏠려 해당 지역 민심은 고려하지 않은 사례다. 

한국당 등 야권의 무분별한 발목잡기에도 청년들은 실망하고 있다. 청년들이 간절히 바라는 법안이나 정책이 국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공감은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만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20대 직장인 류모씨는 "이런 식으로 한다면 차라리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오히려 야당이 더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선·악으로 나눠 서로의 지지율을 끌어모으는 방식은 이제 해묵은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국회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정치권이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공분을 샀다. 최근 국회와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택시-카풀' 문제가 대표적이다. 고질적인 승차거부 등으로 택시 이용에 피로감을 느낀 청년을 비롯한 소비자들이 카풀 허용을 목놓아 외쳤지만, 정작 택시·카풀 대타협기구에는 소비자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직장인 박민희씨(28)는 "포털 뉴스 댓글 한 번만 읽어봐도 여론을 알 수 있을텐데, 이와 동떨어진 합의결과를 내놨다"며 "정부여당은 매번 '준엄한 민심'을 얘기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듣고 있긴 한건지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20대, 그 중에서도 민주당 남성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한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문 정부에서 추진되는 각종 양성평등 정책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한 방송에서 "양성평등과 성폭력, 미투(#MeToo) 국면이 지나가면서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많이 됐다"며 "20대 남성들은 ‘이러다가 여성이 말만 하면 범죄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상대적 피해의식을 제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20대 남성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는데도 '스타'가 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청년들은 진보-보수 프레임도 거부한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 내 숨통을 트이게 할 정책만이 있을 뿐 구시대적인 진보·보수 프레임은 그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진보이니 보수이니는 결국 이름붙이기 나름 아니냐"며 "여의도 정치인들은 이 낡은 구분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기만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이제 청년들은 과거의 진보이든 보수이든 '좋은 정책이 좋은 정치'라는 생각"이라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날이 갈수록 편을 가르는 정당정치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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