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한미일 신뢰, 광복절의 상상력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7.24 04:25

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다자협의체 회의인데 전세계의 관심은 미국과 중국, 양자 만남에 쏠렸다. 의장국 일본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사카 서밋(SUMMIT)의 유일한 성과도 G20 공동선언인 ‘오사카 선언’이 아닌 미중 무역 갈등 ‘휴전’이었다. 

G20 정상회의 직후인 6월 30일, 대결·갈등의 이해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했다. 파격은 전쟁없는 세상이란 희망을 낳았다. 미·중, 북·미, 한·미, 남·북·미 등은 어울렸다. 

반면 오사카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한일간 갈등은 그때부터 본격화됐다. G20 의장국인 일본은 “열린 시장을 만들기 위해 자유롭고 공평하며 무차별적이고 투명성이 있는 무역과 투자 환경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읽은 뒤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출발부터 모순덩어리였던 셈이다. 

화해 분위기 속 일본이 던진 보복 카드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남북 ‘평화’ 국면을 한일 ‘갈등’ 국면으로 바꿨다. 강제 징용, 한일 청구권, 북한, 안보…. 많은 이유를 대지만 정작 그 이유는 아니란다. 스스로 말이 꼬인다. 그러면서 일본이 줄곧 담는 단어는 ‘신뢰’다.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란 얘기다. 

하지만 그 시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를 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직후 “확신을 갖고 말한다. 한미동맹은 전례없이 굳건하다”며 “양국정상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보증이나 공증치고 이만한 게 없다. 

문 대통령은 “개방·포용·투명성이라는 역내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조화롭게 추진키로 했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인도 태평양 전략을 언급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그리곤 함께 DMZ(비무장지대), 판문점 등을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수석 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요청할 정도로 기대하고 신뢰한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 전문가는 문 대통령의 비서실장 이력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셰르파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고 평했다. 콘텐츠를 가진 신뢰 쌓기란 의미다. 한미 양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방위비 협상 등 양자간 ‘거래’도 잘 마무리하며 ‘신뢰’를 다졌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한 친구가 되는데 ‘올인’했다. 전임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다. 콘텐츠보다 정에 기댄다. 그래서 보여지는 ‘신뢰’는 없다. 오히려 흔들린다.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간 거리가 벌어질 때 중국 시장 접근을 꾀하며 줄타기를 시도한 게 일본이다. 

해리티지 재단 전문가는 “아베가 베이징과 따뜻한 관계를 갖고 싶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도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무역협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신뢰가 쌓일만한 거래가 아직 이뤄진 적이 없다. 일본이 신뢰를 입에 올릴 처지가 아니란 얘기다. 

물론 신뢰의 무게를 잰 뒤 미국이 한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로선 미국도 중재 의사가 없다. 미국의 개입 지점은 한일 갈등이 ‘선’을 넘었을 때, 즉 중국이 득을 볼 때다. 미국의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의 판단 기준은 중국이다. 한국의 공략점도 여기다. 일본이 말도 안 되는 신뢰를 언급할 때 우린 절제된 언어로 갈등의 경제적 파장, 일본 덕분에 얻을 중국의 이익을 보여주면 된다. 

아울러 필요한 것은 신뢰를 토대로, ‘친일 청산’과 ‘극일’을 넘는 문 대통령의 창의적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판문점 회동을 보며 “파격적인 제안과 과감한 호응은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역사를 진전시킬 힘이 이런 상상력에 있다”고 평했다. 이젠 문 대통령이 상상력의 산물을 보여줄 때다. 아베 총리는 죽어도 따라하지 못할 메시지를 담은 8·15 경축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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