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과거의 일본, 한국의 미래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8.01 20:25
일본의 도발은 위기감에서 출발한다. 지난해말 기준 우리나라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1346달러로 일본(3만9306달러)의 80% 수준까지 따라붙었다.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평가지수로 하면 차이가 거의 없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구매력 평가기준 1인당 GDP는 4만1415달러다. 일본(4만4549달러)과 엇비슷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한일간 1인당 GDP가 9배 차이가 났던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룬 셈이다.

일본의 위기감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안보 등 전 분야를 망라한다. 정치적으로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다. 독재를 넘어 민주화를 이뤘다. 촛불로 민주주의의 진화를 보여줬다. 자발적 ‘불매 운동’을 ‘놀이처럼’ ‘문화운동처럼’ 해 내는 과정은 ‘배타’ ‘혐오’로 대응하는 일부 나라와 차별화된다.

‘남·북·미’ 중심의 평화 프로세스에서 매번 배제된 일본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비정상국가’인 일본은 정상 민주국가인 한국이 부럽고 무섭다. 지난 70여년 우리가 만들어 낸 성공의 역사 덕이다.

물론 일본은 우리보다 더한 성공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전범국임에도 불구, 세계 2위의 경제대국까지 가봤다.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은 전세계에서 먹힌다. 기술력 등 일본의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성공한 과거보다 미래의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성공의 경험을 갖고 있다. 반면 ‘성공 이후’는 다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20년을 지나 어느덧 한 세대가 됐다. 도전받을 때마다 그들의 선택이 퇴행적이었기에,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들의 답변이 과거지향적이었기에.

과거사에 대한 사과도, 정치적 변화도 꾀하지 않았다. 경제정책도 재정과 금리와 환율에 기댄 게 전부다. 사고(思考)를 넓히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일본이 퇴행적 선택을 한 지 한 달, ‘성공 이후’ 에 대한 도전과 질문은 우리를 향한다. 어찌보면 지난 20여년간 이어져 온 물음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잃어버린 한국’이 되지 않을까라는.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

성공의 힘은 평가받아 충분하지만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힘은 약하다. 오히려 과거 성공의 힘은 미래를 준비할 힘마저 약화시킨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한다.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이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 위기라면 우린 지금 그 순간에 서 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말이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화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보수건, 민주화를 성공시켰다고 자평하는 진보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역량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게 평화건, 4차 산업혁명이건 말이다. ‘정쟁’은 역량과 실력 부족을 남 탓으로 돌리는 핑계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일본이 이미 갔던 길이다.

우린 ‘의식적·의도적’으로 과거적·퇴행적 사고를 거부해야 한다. 오히려 전략적·전면적으로 미래를 되뇌여야 한다. 과거는 사고를 제한하지만 미래는 사고를 확장시킨다. 같은 경험, 특히 성공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비슷한 결정을 내린다. 창조적 파괴, 발전적 해체 등이 쉽지 않다. 반면 다양한 경험은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 세대를 넓혀야 다른 경험을 가진 새로운 주역을 만날 수 있다. 세대 교체가 아닌 세대 확장이다.

공간도 수도권에서 지방, 한반도, 신남방 등으로 넓히자. 섬나라도 아닌 우리가 굳이 섬나라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본이 던진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부품·소재에 매몰되기 보다 과학기술·공유경제·데이터 등으로 고민을 확장하자. 일본이 수출 규제·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 과거 퇴행적 사고로 발버둥치는 2019년 여름, 우린 미래로 가는 확장적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 '정상국가' 한국은 일본과 수준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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