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통령의 시간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9.04 04:25

#조국의 시간. 지난 2일 오후 3시30분부터 3일 오전 2시 13분까지. 10시간 43분, 약 500분이다. ‘8·9’ 개각 후 25일만에 얻은 시간이다. 이 600시간은 역대급이었다. 언론과 야당의 검증이 펼쳐졌다. 그리고 야당은 빠진 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언론이 대면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기습”이라고 정의했지만 사실 여야 모두 예상했던 그림이다. 자유한국당은 ‘청문회 보이콧+지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청문회’를 구상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민 청문회’를 언급한 게 지난달 22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엿새 뒤 청문회 보이콧 검토를 말한다. ‘조국의 시간’을 띄운 것도 이인영 대표다. "9월3일이 지나면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선 전적으로 대통령의 시간이고 (대통령의) 재송부 요청이 있는 시간까지는 정치적으로 후보자의 시간이기도 하다".(1일 기자간담회)

여야 사이에서 조국은 불려나오는 대신 스스로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 속에서 시간을 채웠다. 언뜻 ‘의혹 vs 해명’의 구도로 보지만 결국 핵심은 태도와 자세였다.

조국은 금수저를 인정하며 “가진 자였고 혜택받았다”고 사과했다. “부끄럽다” “반성한다” “죄송하다” 를 거듭했다. 검찰 개혁에 대해선 ‘소명’을 내세우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반면 뜬금없이 링에 오른 언론은 머뭇거렸다. 정치권 인사는 “조국은 최소한의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 반면 언론은 이와 비교됐다”고 평했다. 3주간 조국을 흔든 언론이 ‘조국의 시간’을 빛내 준, 아이러니다.

#대통령의 시간. ‘조국의 시간’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이다.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등 수순은 예상된다.

문제는 과정이다. 문 대통령은 ‘8·9’ 개각 후 24일이 흐른 지난 1일에야 입을 열었다. 그마저도 형식이나 내용 모두, 우회했다. 순방 전 배웅 나온 당·정·청 인사들에게 주문한 말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하는 형식을 취했다.

조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상황 설명도 부재했다. 그런 채 ‘대학 입시 제도 재검토’라는 지시를 내렸다. 뜬금없다. 공감 부족 탓이다. 개각 이후, 조국 논란 이후 스스로를 극도로 타자화·객관화시킨다. 대통령 책임의 영역인데 말이다. 유체 이탈 화법으로 들린 이유다.

“젊은 세대에 상처”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의 그 위로도 낯설다. 현 상황을 인정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개각 후 3주가 넘어서야 등장했다는 것은 문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의 공감 능력 수준을 보여준다.

지난해 1월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청년 기회박탈이라는 공정성 이슈로 논란이 됐을 때 달라진 국민정서를 놓쳤다며 발빠르게 인정했던 감각은 무뎌졌다.

‘조국 논란=대학 입시’가 아니다. 국민은 다면적·다층적·다중적이다. 국정운영도 이에 맞춰야 하는데 단편적·단선적·일반적 방식에 익숙하다. 단편적이라면 진영을 나누면 끝이지만 다면적·다층적 현실 속에선 대화와 설명, 공감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 그것으로 '대통령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

인정과 사과는 기본이다. 개각, 조국, 국정을 낮은 자세로 말해야 한다. 스스로 외친 공정·정의·평등을 다시 설명하기 앞서 국민의 공정·정의·평등을 듣고 이해해야 한다.

3년전 촛불의 공정과 지금 촛불의 공정, 서울대 총학생회의 정의와 경북대 총학생회의 정의, 2030의 평등과 86세대의 평등…. 정면 돌파하기엔 현실이 너무 다층적이다. 지지율도 예전만 못하다.

특히 '대통령의 시간'은 비서실장이나 국민소통수석 등이 대신할 수 없다. 오롯이 문 대통령이 채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조국의 시간’을 ‘국민의 시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을 토대로 한 ‘대통령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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