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끝없는 고소·고발전…국회가 자초한 '검찰공화국'

[the300][검찰공화국 만드는 국회]국회의원 16%가 법조인…'법조 국회' 폐해 비판 목소리도(종합)

김평화 기자, 백지수 기자 l 2019.09.06 04:00
여상규 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6일로 최종 합의, 증인채택 11명 등 최종 의결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①조국 임명권을 검찰이? '검찰공화국' 자초한 국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권을 검찰이 쥐고 있다?

2019년 8~9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은 대한민국 최대 이슈다. TV를 틀면 ‘조국 뉴스’가 나온다. 누구를 만나든 ‘조국 얘기’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조 후보자 임명 여부가 ‘검찰’에 달렸다는 얘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이 조 후보자 주변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서면서다. 인사청문회보다 검찰 수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된다. 사실상 검찰이 정국의 주도권을 쥔 셈이다.

‘검찰공화국’의 등장. 이 상황은 정치권이 자초했다. 하루를 멀다하고 정치권의 ‘고소·고발’이 이뤄진다. 정치인의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느라 검·경은 정신없다. 사건만 생기면 고소·고발장을 들고 검찰청 또는 경찰서로 향한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권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이 주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았다. 이런 의원들이 검사 앞으로 몰려간다. 다른 의원들이 잘못한 게 있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꼴이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조 후보자 친인척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국회는 사실 그 이전부터 ‘신호’를 줬다. 조 후보자 관련 접수된 고소·고발건만 십여건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조 후보자 관련 고소·고발한 사건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사기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직권남용 등 혐의도 다양하다.

5일에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조 후보자 딸에게 총장 표창장을 준 적이 없다고 한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확인 차’ 전화를 건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소·고발을 정치에 활용하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지난 2월 곽상도 한국당 의원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곽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일파 김지태씨 유족들의 소송을 맡아 승소, 국가로부터 117억원을 돌려받았다”고 주장한 것을 문제삼았다.

4월엔 이해찬 대표 명의로 ‘강원산불 가짜뉴스’를 퍼뜨린 7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엔 김순례 한국당 의원이 포함됐다. 5월말엔 ‘외교기밀’ 통화내역을 누설한 혐의로 강효상 한국당 의원을 고발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민주당은 세차례에 걸쳐 한국당 의원들을 무더기 고발했다.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혐의다. 한국당도 민주당 의원들을 공동폭행 혐의 등으로 고발했지만 국회선진화법에 비해 처벌 강도가 낮다.

결국 100명이 넘는 현역 의원과 보좌진이 경찰 수사대상이 됐다. 피고발·고소인만 총 121명, 이중 109명이 현직 의원이다. 한국당 의원이 59명, 민주당 40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무소속 1명 등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경찰의 소환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나온 고소·고발건은 향후 여야 ‘협상카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의미의 ‘타협’이 아닌 ‘협박’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 수준을 보여주는 한 모습이다.

‘고소·고발전’은 한국 정치에서만 찾을 수 있는 모습이다.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는 정치적 논란을 검찰이나 경찰로 가져가는 일이 없다. 수사기관에서도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고소나 고발을 해도 큰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명예훼손 처벌 자체가 없다. 정치권 고소·고발 ‘단골메뉴’인 명예훼손이 없으니 여야 의원들이 고소장을 교환할 일도 더더욱 없다.

검사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중인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토론으로 양쪽 입장이 반영되고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검찰이나 법원에 의해 일도양단적 결론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의 문제”라고 말했다. 금 의원은 “법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데, 이처럼 사법이 정치적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다 보면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②"시민은 다양한데"…국회 10명 중 1명 이상 법조인

-10명 중 1~2명은 법조인 출신 '법조 국회'…"민의의 전당 해쳐" 비판도

0.06% 대 16.4%.

약 5000만명의 우리 국민 중 법조인의 비율과 '민의의 전당' 국회(20대 국회 기준)에서 법조인의 비율을 비교하면 이렇다.

시민이 만들어준 국회가 사법권력에 쉽게 기대는 데엔 국회 자체가 '법조 국회'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의 다양성에 비해 사법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법조인들 비중이 높은 국회다. 민의를 대변해 입법해야 하는 국회가 사법 절차에 익숙한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에 의해 사법에만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대 국회에서 사법시험이나 군법무관 시험을 거친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5일 현재 298명중 49명이다. 판사 출신이 9명(△더불어민주당 3명 △자유한국당 5명 △무소속 1명), 검사 출신이 18명(△민주당 3명 △한국당 10명 △바른미래당 1명 △민주평화당 1명 △무소속 2명)이다. 변호사 출신은 22명(△민주당 13명 △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4명 △무소속 2명) 등이다.

역대 국회에 비하면 법조인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19대 국회의 법조인 비율은 14.3%로 20대 국회(16.4%)에 비해서는 낮았다. 18대 국회 때만 해도 10명 중 2명꼴(19.7%)로 법조 경험이 있었다. 17대와 16대에도 각각 18%, 15%였다. 매 국회 회기마다 10명 중 1~2명 정도는 법조인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주로 입법부에서 사법부를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 18명 중에는 이날 현재 판사 출신 여상규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10명이 법조인 출신이 속해 있다. 여당과 제1야당 간사인 송기헌(민주당)·김도읍(한국당) 의원은 각각 검찰 선후배 사이다.

현역 법사위원이 아니더라도 19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민주당 의원처럼 앞서 법사위를 거쳐간 의원들도 적잖다. 20대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논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도 구성돼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8월 말로 임기가 끝난 유기준 사개특위 위원장을 비롯해 박범계·안호영·이상민·이종걸(이상 민주당)·곽상도·정종섭(이상 한국당)·권은희(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8월 말까지 사개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각 당에서 법률위원장·법률지원단장 등의 당직을 맡아 당에 기여하기도 한다. 패스트트랙 충돌을 비롯해 드루킹 사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과 관련 각 당에서 진행한 고소·고발전에 이들이 개입해 있다. 법사위 간사인 송 의원의 경우 현재 민주당 법률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검사 출신 최교일 의원은 한국당 법률지원단장이다.

사실상 법조인들이 국회의 입법 기능보다는 사법부의 기능과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오히려 입법 기능인 법사위에서의 체계·자구 심사 활동 과정에서는 입법에 도움을 주기보다 "상원 노릇을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법조 국회'가 폐해만 낳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법조 국회의 장점은 없다"며 "국회가 고소·고발전에만 집중하는 것은 정치력이 부족하고 무책임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사법의 논리는 가해자, 피해자, 이해당사자 사이의 문제로 영역이 그리 넓지 않다"며 "하지만 정치를 통한 입법은 창조적으로 시민들 사이에 어떤 내용을 법안으로 만들지 넣을지를 토론하는 것이라 법에 대한 전문성보다 정치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