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보훈처 하재헌 중사 공상 판정, 북한 눈치 때문?

[the300]이전 정권에서도 지뢰 피해 군인 공상 판정 받아…보훈처 "국가유공자법 조항 불명확한 탓"

원준식 인턴기자 l 2019.09.19 17:15

【세종=뉴시스】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가 2015년 북한이 설치한 목함지뢰를 밟고 상이를 당한 하재헌 중사에게 ‘전상’이 아닌 ‘공상’ 판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하 중사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통해 ‘전상군경’과 ‘공상군경’은 다르다며 명예회복을 호소했다. 하 중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정치권과 네티즌들은 보훈처를 비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보훈처가 이토록 나라의 영웅을 무시하는, 북한 눈치 보기 기관으로 전락한다면 즉시 해체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대통령이 북한 눈치보니 엄연히 북한이 저지른 도발도 보훈처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뢰 상이 군인들은 정권과 남북관계에 따라 다른 판정을 받았을까?

 

[검증 대상] 정권에 따라 지뢰 폭발 피해 군인의 ‘전공상이 판정’이 달라졌는지 여부

 

◇육군은 ‘전상’, 보훈처는 ‘공상’…같은 사건 두고 다른 해석

 

하 중사의 ‘목함지뢰 희생’이라는 사안을 두고 육군과 보훈처는 각각 다른 결정을 했다. 보훈처 심사보다 먼저 이뤄진 육군은 하 중사를 ‘전상자’로 판정했다. 하 중사가 DMZ(비무장지대) 수색작전 도중 지뢰를 밟아 다친 것은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상이’라고 봤다.

 

반면 올해 8월 보훈처는 하 중사에 대해 ‘공상 군경’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 중사의 부상을 ‘전투 중 상이’가 아닌 ‘공무 수행 중 상이’로 판단했다.

 

보훈처의 결정에 하 중사는 "현재 북한과의 화해 교류 등으로 인해 보훈처에서 이러는 게 말이 되냐"고 주장했다. 하 중사의 사연을 접한 야당과 네티즌들은 "정권이 북한의 눈치를 보며 희생자 예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보훈처는 북한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보훈처 대변인실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지뢰 피해 군인들은 어떤 정권이든, 소위 보수든 진보든 동일하게 공상으로 처리돼 왔다"고 밝혔다. 

 

◇정권 성향 아닌 근거 법령의 전공상이 분류 기준 따라


왼쪽 : 군인사법 시행령 별표9 오른쪽 :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별표1 출처 : 국가법령정보센터

보훈처는 "국가유공자법에 해당 사안에 대한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공상 판정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실제로 보훈처가 근거로 삼은 국가유공자법 시행령과 군이 근거하고 있는 군인사법 시행령의 전공상이 분류 기준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군이 근거한 군 인사법 시행령 '별표 9'의 '전상자 분류기준표 1-7'은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하여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거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은 전상자로 분류한다고 했다. 하 중사도 청원문에서 군에서의 전공 심사 당시 해당 기준에 의해 '전상자'로 판정됐다고 했다.

 

반면 보훈처의 판정 근거가 되는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의 '국가유공자 요건의 기준 및 범위'에는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따른 '전상군경' 분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훈처 대변인실은 이같은 이유를 들며 "하 중사는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별표1의 제2호에 따라 공상군경으로 판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보훈처가 근거하고 있는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제3조(국가유공자 요건의 기준과 범위)는 2012년 6월 전문개정된 것으로 현재의 남북관계와 관련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훈처, 이전 정권 때도 지뢰 피해 군인에 '공상' 판정


보훈처가 하 중사와 같은 지뢰 피해 군인들을 ‘공상 군경’으로 처리한 것은 현 정권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6월에도 DMZ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지뢰 폭발로 다리 부상을 당한 군인이 전상 판정을 받지 못했다. 곽재민 중사는 치료비도 지원받지 못해 빚까지 졌다. 


당시 곽 중사 사건을 살폈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비서실장 신언직 보좌관은 더300과 통화에서 "곽 중사 사건 당시에는 전상은 물론이고 공상 처리조차 해주지 않아 어렵게 싸워 공상 판정을 받았다"며 "곽 중사 역시 여전히 공상 군경"이라고 말했다. 

신 보좌관은 하 중사 공상 판정이 북한 눈치보기라는 주장에 대해 "곽 중사 당시의 정권에서도 치료가 끝나면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나서서 전상 검토하라고도 했는데 북한 눈치를 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검증 결과]


대체로 사실 아님


보훈처는 시행령 해석의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의 지뢰 피해에 대통령과 여당 모두 '전상 처리'를 검토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훈처의 판정이 북한 눈치보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북한에 대한 태도가 달랐던 이전 정권에서도 지뢰 피해 군인들이 공상 판정을 받은 점, 근거 시행령에 지뢰 피해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봤을 때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하 중사에 공상 판정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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