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낡은 배' 버릴 용기도 없는 文정부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9.12.06 04:25
#지난달 19일, 임기 절반을 지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섰다. 300명의 국민과 2시간 가량 즉문즉답하는 ‘국민과의 대화’. 각본없는 타운홀 미팅 형태의 직접 소통은 어수선했지만 참신했다. 

문턱을 낮추는 친근함, 경청하는 자세 등 문 대통령의 장점은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김민식군 부모의 사연에는 침통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며 공감을 극대화했다. ‘민식이법’은 곧 전국민의 이슈가 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언론을 도배한 것은 “경제 낙관” “집값 잡았다” 등 자화자찬뿐이었다. ‘국민과의 대화’가 있은 지 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기억나는 키워드는 없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대통령의 생각’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권 인사들은 ‘형식’ 핑계를 댔지만 실제론 ‘내용 부재’가 분명했다. 한마디로 하반기 국정 운영의 콘셉트(concept, 개념)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읽었다며 공개한 도올 김용욕 한신대 석좌교수의 책도 같은 선상에 있다. ‘90년대생이 온다’ ‘82년생 김지영’ ‘축적의 시간’ 등 이전에 문 대통령이 언급한 책과 비교하면 다소 뜬금없다. 

대통령의 행위 하나하나가 메시지인데 문 대통령은, 그리고 청와대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 그렇게 후반기 시작부터 발걸음이 꼬인다. 흐름을 놓치고 우왕좌왕한다. ‘적폐 청산’ ‘소득주도성장’ 등.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집권 전반기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존재했다. 

하지만 집권 하반기 비전,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여권 중진 인사는 “현재를 보면 집권을 해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려 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인사를 예로 들었다. “총리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A씨가 이번 인사 콘셉트가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돌아온 답은 ‘콘셉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였단다. 콘셉트를 정한 뒤 다시 얘기하자며 말을 끝냈다고 한다”. 

인사 흐름이 흔들리는 이유다. 총리 교체설, 개각설 등 온갖 ‘설’만 나돌 뿐이다. 개각 등 인사도 실제 더딘 게 아니라 더딘 것처럼 비친다. 언론 등이 설레발친 때문이 아니라 집권 초반부와 달리 일찍 흘러나온 때문이다. 컨셉을 잡지 못한 채 개인만 알려지니 그 개인만 일찍 소비·소모될 때문이다. 

장·차관 차출설도 그렇다. ‘무엇을 할지’ 컨셉이 없으니 ‘총선에 이용하기 위한…’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콘셉트를 잡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능력 문제다. 대한민국의 권력 청와대와 검찰 모두 흔들리는 데 위기 관리 능력이 ‘제로(0)’다. 갑자기 무능해진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최순실 사태’ ‘국정농단’ 등이 있기 전까지 민주당은 ‘봉숭아 학당’으로 불릴 정도로 약했다. 2015년 전후 정치권에서 민주당은 역대 최약체 야당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최소한의 혁신을 이뤄냈지만 체질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던 정당이 대선 승리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압승했다.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승리였다. 

민주당, 현 여권의 본질은 변한 게 없었다. 옛 시스템을 갖춘 낡은 배는 그대로다. 바다가 인도해 줬을 뿐인데 그 항해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한 것이다. 

파도와 바람에 의지했을 뿐 스스로 운전대할 능력을 갖추진 못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교육·노동·혁신(카풀·타다 등)과 관련 미래를 말하지 못한다. 

낡은 배를 버릴 용기도 없다. 방향을 제시할 나침반을 만들지 못한다. 기획 능력도 떨어진다. 그저 하루하루 대응하는 데 급급하다. 

페이스를 잃은 검찰의 도발에 함께 흥분할 뿐 전략·전술은 없다. 그런 면에서 자유한국당이 최근 ‘친문 게이트’라 칭하며 철저한 기획에 의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은 현 여권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 아닐까. ‘선수’ ‘프로’가 있다면 이렇게는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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