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선, 그 치명적 관계

[the300]

김성휘 기자 l 2020.01.06 06:25
15~20대 총선과 대통령/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총선.” 

이낙연 국무총리의 말이다. 이 총리는 지난해 12월17일 자신의 후임으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내정된 뒤, 19일 세종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자신은 여당으로 돌아가 할 일은 하겠다면서 던진 화두다. 

이 총리 외에도 정치권 다수는 ‘총선’을 새해 최대 화두로 본다. 어떤 대통령이건 청와대건 총선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왔다. 왜일까. 

◆대통령도 피하지 못할 ‘건강검진’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대통령 국정지지율 여론조사에 언제나 내놓는 ‘정답’이다. 현실은 반대다. ‘지금 추진하는 정책이 과연 지지받고 있는가.’ 이에 대해 참모들도, 대통령도 갈증이 있다. 

대선은 5년마다 치른다. 대통령은 그사이 재신임을 묻지 않는 한, 숱한 정책이나 선택에 대해 국민 마음속을 들여다 볼 방법이 없다. 청와대가 내심 각종 여론조사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특정그룹에 대한 지속 관찰, 심층 인터뷰도 사실상 여론조사의 한 갈래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전국동시에 치르는 초대형 여론조사다. 일부 표본만 알아보는 여론조사와 달리 투표권 있는 유권자 누구나 ‘응답’할 수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정치적 건강검진 기능을 한다. 비교적 정확하고 정밀한 검진이다. 

검진 결과는 처방으로 이어진다. 총선 이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다. 국회선진화법 등 제동장치가 있지만 여당이 과반을 넘기면 대통령이 원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 수월하다. 의석 2/3를 넘으면 국가의 근간인 헌법까지 고칠 수 있다.

반면 여당이 총선에서 제1당, 또는 과반이 되지 못하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큰 어려움에 빠진다. 야당은 토론이나 타협으로 안되면 ‘머릿수’라도 내세워 대통령의 중점법안을 저지할 수 있다. 여당으로선 좌절이고, 야당 입장에선 견제이자 균형이다. 여소야대에서 야권이 뭉치면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다. 

2020년, 문 대통령의 힘도 총선 결과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21대국회에 압도적 힘을 가지면 문재인정부의 국정 장악력도 유지된다. 각 정당간 상호 견제 의석을 확보하면 느슨하건 긴밀하건 연대나 합종연횡이 활발해진다. 

이같은 상황이 법률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면, 총선 결과는 국회 담장을 넘어 국민의 삶에 영향을 준다. 총선의 힘이다. 

비례대표=‘대통령의 뜻’…옛말? 
【서울=뉴시스】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인 23일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청와대 재임과 퇴임 시 찍었던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미공개 사진 40여 점을 공개했다. 사진은 2007년 5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5.18 기념식을 마친 다음 날 무등산 등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05.23. (사진=사진가 장철영 제공) photo@newsis.com


모든 정당의 존재 이유가 집권이듯 어느 대통령이나 총선에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그 자체를 죄악시할 수는 없다. 단 3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과도한 개입은 법으로 규제한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던, 이른바 제왕적 총재 시절엔 이런 영향력을 공공연하게 행사했다. ‘톱다운’(하향식) 공천의 시대에 대통령의 뜻은 여당 공천을 결정하는 ‘보이는 손’이었다.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 의원 당적이동(꿔주기)와 같은 정계개편도 뒤따랐다. 민주화 이후 아무리 권위적인 대통령이라도 국회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원칙을 허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어떻게든 다수 의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총선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역풍을 불러온다. 장기간 당청 분리 시도를 거쳐 현재 질서가 확립됐다. 그 과정에 값비싼 댓가도 치렀다. 

2004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를 불러온 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총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각하, 즉 탄핵을 무효화했고 대통령은 업무에 복귀했다. 

2020년 현재 권력·사정기관을 쥔 정권의 선거개입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렇다 보니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기 사람’을 지지한다. 책에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로 의중을 표시한다. 이 모습을 당사자가 SNS에 올려 세상에 알려진다. 

물론 이 같은 활동도 선거가 다가오면 금지된다. 공직자가 출마하려면 선거 3개월 전에 사직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취지다. 선거판에 적용되는 이른바 ‘공정’의 룰이다. 

그럼에도 친대통령-친여당 인사들이 얼마나 당선될지는 총선마다 초미의 관심이다. 구별짓기는 더 세분화되는 추세다. ‘친’으로 성에 차지 않아 ‘찐’(진)을 찾는다. 친박보다 진박, 친문보다 진문 따위의 수식어다. 여기 매달리면 폐쇄적이 되기 쉽다.

◆그들도 국회의원이었다..盧 13대·MB 15대·文 19대에 등원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04.15. kkssmm99@newsis.com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7명의 대통령 모두 공통 경력을 갖고있다. 국회의원이다. 고향, 정치노선,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달라도 이 점은 변함없다. 역대 공동 최다선(9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6선)도 국회의 야당 당수로 수십년간 리더십을 가다듬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YS 공천’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88년 13대 총선 부산에서 당선, 5공청문회 스타로 단박에 국민에게 각인된다. 이후 YS의 3당 합당에 반대, 독자노선을 걸었고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며 DJ와 손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5대 총선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를 시작했다. 지지층이 겹친 이종찬, 노무현 두 후보가 표를 나눴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나 선거법 위반혐의로 2년후 의원직을 상실했다. 종로구는 보궐선거를 치렀는데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98년 15대 국회 보궐선거로 당선된다. 1997년,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는 그때까지 오랜 세월 은거하던 박 전 대통령을 영입했다. 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민심은 압도적인 표로 ‘박근혜 시대’를 예고한다.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주요 무대도 총선이다. 그는 당대표이자 ‘친박’의 지도자 시절, 본인의 당선은 물론이고 지원 유세해 준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켰다. 자연히 친박의 우산 아래 수많은 정치인들이 모여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랜 기간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지만 정치입문은 한사코 거부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는 문 대통령의 생각을 바꾼다. 대선 도전을 마음먹은 문 대통령은 그 발판 격으로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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