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 진짜 '험지'는 어젠다·정책

[the300][21대 총선 사용설명서-정책 이슈]

조철희 기자 l 2020.01.06 06:15

100일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선거판을 흔들 뚜렷한 빅이슈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지난 연말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충돌과 보수진영 분열 등으로 이슈, 어젠다, 정책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역대 선거 때마다 이런 양상은 비슷했다. 정치권은 정책 이슈가 없다며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텃밭인 대구를 찾아 “피눈물 나게 반성한다. 부디 용서해 달라”며 무릎을 꿇고 읍소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에 삼성의 미래차 사업부를 유치하겠다고 무리수를 던졌다.

유권자들의 정책·공약 평가가 투표에 작용했다는 것은 선거 결과가 나온 뒤면 매번 확인됐다. 올해 4·15 총선 역시 잠재한 이슈들이 즐비하다. 정당과 출마자들은 ‘험지’처럼 외면할지 몰라도 유권자들은 내 삶을 바꾸는 이슈들에 어떤 어젠다와 정책이 가능할지 답안지를 기다리고 있다.

◇올타임 레전드 선거 이슈 ‘부동산’=유권자들의 관심은 단연 먹고사는 문제, 경제다. 특히 개인 자산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규제나 정책이 선거를 계기로 어떻게 변할지 가장 궁금해 한다. 당장 집값이 어떻게 될지는 물론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교통과 인프라, SOC(사회간접자본), 도시 관련 이슈들까지 들여다보는 유권자들이 적잖다.

올해 총선의 부동산 이슈는 이미 지역에서부터 들끓는다. 경기도 일산 지역의 경우 정부의 3기 창릉신도시 정책으로 여권을 향한 여론이 심상찮다. 20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을(전현희 의원)과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서울 송파구을(최재성 의원)에 진입한데 이어 올해 총선에서 강남권 공략을 강화하려는 민주당은 12·16 대책 등 잇따른 부동산 규제 강화 정책에 대해 이 지역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 이슈가 선거를 지배했던 대표적 사례는 2008년 18대 총선이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대통령 측근 비리와 민간인 불법사찰 등 악재가 많았지만 ‘뉴타운’ 공약으로 서울 48개 지역구 중 40석을 휩쓸었다.  

다만 집값을 ‘올리겠다’ 또는 ‘잡겠다’에 따라 표심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20대 총선 때는 한동안 치솟던 집값이 한풀 꺾이자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여당이 얼마나 명확한 정책 제시로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게 하는지가 유권자들의 판단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 대안, 선거 결과 가른다= 경제 이슈는 야당이 선거 때마다 내미는 ‘정권 심판론’의 핵심 소재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경제성장률, 고용,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를 근거로 문재인정부의 ‘경제 실정’을 공략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뚜렷한 성과나 고용의 괄목할 개선이 없는데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지속 하향해 경제 문제는 여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총선 전 확정치가 발표될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목표 2%선을 지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조선, 해운, 원전, 중공업 등 업황이 악화된 PK(부산·경남) 지역처럼 경제적 어려움이 큰 지역들일 수록 경제 이슈에 주목한다.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창원·성산 지역의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단 500여표 차로 신승한 사례는 이 지역 여론의 변화 기류로 분석된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가동이 중단되고 한국GM 공장이 폐쇄된 군산도 경제 이슈가 선거를 좌우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여당으로선 고성장세가 아닌 상황에서 경제는 항상 약점이라 선거 때 경제가 아닌 다른 이슈를 띄우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반면 경제 실정을 비판하는데 주력하는 야당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반사이익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선거에서도 야당은 정권심판론의 핵심인 경제적 쟁점을 이슈화 하는데 실패하면 우위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제적 대안은 지난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제시했고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포괄적 성장 정책을 제시해 지지층을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비례대표 중요해진 선거, ‘정책’ 더 본다=사회, 복지, 안보 정책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호도가 투표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이 분야 이슈들은 비례대표 정당 선택과 밀접한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21대 선거에서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선 정시 확대 등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 정책이 주요 이슈다. 특히 정치인들의 자녀 입시가 도덕성 측면에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의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 정도가 유권자들의 평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남북 또는 북미 간 총선 전 깜짝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선거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20~30대 여성들의 성평등 관련 이슈, 선거 때마다 쟁점으로 부상하는 동성애 등 소수자 관련 이슈도 주목된다. 여권이 중점 추진했던 주 52시간 근로제 등 노동환경에 대한 평가도 이번 총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방에선 공기업 지방이전 등 지역균형발전 정도가 얼마나 피부적으로 와닿느냐가 여야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총선에선 선거연령 하향으로 2002년 4월 16일생까지 투표가 가능해 약 50만명의 청소년들이 유권자로 참여할 수 있다. 젊은층 유권자가 확대되는 것으로 이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드러낼지도 관건이다. 비중이 크지 않은 세대이지만 서울·수도권 등 박빙 승부가 많은 지역에선 이들의 판단과 참여가 승부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조국 사태’의 여진도 무시할 수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들의 법원 재판 과정을 비롯해 조 전 장관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한 검찰개혁의 과정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 속에서도 통과됐던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운영법 등 쟁점 법안 처리에 대한 평가도 이번 총선에서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