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낙연이 불출마한다면…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20.01.07 04:25

#‘최장수 총리’ 이낙연 국무총리가 물러난다. 고공행진 중인 지지율 숫자로 보면 성적표는 ‘A’ 수준이다. 


2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30%에 육박한 조사도 나온다. 한때 ‘박빙’을 이뤘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격차도 꽤 벌렸다. 

여권 입장에서도 만족스럽다. 유력 차기 주자를 갖고 있는 것만큼 든든한 게 없다. 국정 운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치에 대한 안정감은 최고로 평가된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구제역·산불 등에 대한 성공적 대응은 이 총리였기에 가능했다. 

여권 인사는 “골프로 치면 OB(아웃오브바운드)가 없는 안정적 플레이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강한 일처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총리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했다고 한다. 후임자를 지명하는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은 “책임 총리로서의 역할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셨고 현장 중심 행정으로 국민과의 소통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영남 출신인 문 대통령은 일찌감치 호남 총리를 구상했다. 의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자신의 한계도 알고 있었다. 국회의원 4선, 광역단체장(전남지사)을 지낸 이 총리만한 퍼즐은 없었다. 

차기 대권주자로 ‘이낙연 스타일’ ‘이낙연 이미지’가 다듬어졌고 재생산됐다. ‘깨알 수첩’으로 불릴 만큼 그는 꼼꼼하다. 안정감은 여기서 비롯됐다. 

안정성은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선다. 정치적 성향상 중도·통합 행보가 가능한, 확장성있는 정치인이라는 기대감을 주기 충분하다. 

물론 꼼꼼한 일처리를 뒷받침하느라 공직자들은 죽어났다. 그는 ‘내각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했다. 차관은 물론 장관도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견고한 지지도는 중도뿐 아니라 지지층의 환호가 있기에 가능했다. 유튜브에서 그의 ‘사이다 답변’ 동영상은 인기 콘텐츠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왜 평양에서 태극기가 휘날리지 않았냐고 야당 의원이 항의했을 때 이 총리의 답은 이랬다. “그럼 김정은이 남한에 오면 서울에 온통 인공기가 휘날려야 하나”. 

# 이 총리는 이제 정치를 꿈꾼다. 문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그의 뜻을 존중했다. 

차기 대권 주자, 여권 거물인 그를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서울 종로 출마’, ‘이낙연 VS 황교안 빅매치’…. 

정치 1번지에서 야권 유력 인사를 꺾고 차기로 가는 그림은 그럴 듯 해 보인다. 본인 스스로도 이 흐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반대다. 이 총리, 개인을 위해서나 여당을 위해서나 좋은 카드가 아니다. 언뜻 화려해 보이나 재미도, 감동도 없다. 

일정도 빠듯하다. 차기 대통령 선거는 2022년 3월 치러지는데 2021년 여름엔 여당 후보가 확정된다. 대선 캠프는 2020년말쯤 꾸려야 한다. 1년 남짓짜리 종로 국회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성에 맞는 상징적 역할, 지역구 의원 등이 눈앞에 아른거리겠지만 이 유혹을 떨쳐야 이긴다. “여전히 제 심장은 정치인”이라고 강조해온 이 총리는 ‘정치인 이낙연’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반대편의 누군가 뜬금없이 “험지 출마”를 외칠 때 “불출마·백의종군” 한마디로 판을 흔들며 등장해야 한다. 

전체판을 움직여야 할 거물이 장기판 돌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꼼꼼한 총리’에 이은 ‘담대한 정치인’ 이낙연을 기대하며. 2년 7개월 고생 많으셨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