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황교안, 우물쭈물하더니…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20.02.07 04:25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치에 뛰어든 지 1년이 넘었다. 이달 말이면 당 대표 임기 1년을 지난다. 입당 후 43일만에 당 대표 선출될 만큼 황교안에 대한 기대는 컸다. 대통령 선거·지방선거 참패 후 허덕이던 한국당, 보수 진영이었기에 더 그랬다.

황교안은 정치권에 연착륙했다. 따지고 보면 경착륙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모두가 반겼다. ‘정치 초년생’ 이미지를, 몰락한 보수의 유일한 희망이란 기대감이 덮었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적절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할 즈음, 그의 등장은 화제가 됐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를 회피했다는 한때의 비난은 묻혔다. 오히려 상처입지 않은, 온전한 ‘상품’으로 2019년 정계에 들어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 ‘이른바’ 허니문 기간이 끝나갈 시점, 황교안은 최대 호재를 만난다. ‘조국 사태’다.

콘크리트로 여겨졌던 진보 지지층에 균열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린다. 문 대통령 ‘절대 우세’ 구도가 ‘혼전(混戰)’으로 변한다. 자칭 ‘중도층’도 적잖게 돌아선다. 흩어졌던 보수 우파는 결집한다.

헌데 황교안의 득점력이 신통치 않았다. 광화문의 ‘태극기’에 취해 정작 광화문의 목소리를 못 들은(실제론 안 들은) 때문이다. 대중과 황교안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광화문은 보수의 리더, 보수의 지도자 모습을 바랐는데 황교안은 투사가 되려 했다. ‘투쟁’을 목표로 삼는 투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반면 지도자는 가치, 비전을 토대로 투쟁 방향을 제시한다. 투쟁은 목표가 아닌 수단의 일부에 불과한데 황교안은 투쟁에 빠졌다. 실제 기억에 남는 황교안의 정치 행위는 삭발·단식·농성이 전부 아닌가.

#이후 황교안은 허둥지둥한다. ‘조국 사태’로 여권이 정신을 못 차릴 때 박찬주 영입 논란을 자초한다.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사과나 해명이 아닌 ‘보수대통합’이었다. 이슈는 다른 이슈로 덮는 게 정치 기술이지만 뜬금없다는 평이 주였다.

보수대통합을 제안한 시점이 2019년 11월6일이니 딱 3개월이 흘렀다. ‘긴급’하게 외쳤던 그 통합은 아직, 여전히 진행중이다.

‘뜬금포’는 이어진다. 한국당의 3선의원 김세연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당 해체와 황교안의 백의종군을 촉구하자 정치권, 특히 보수진영이 들썩였다. ‘제대로 반성하고 제대로 혁신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 때 황교안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한다.

“황교안은 왜 단식하는거야?”라는 비아냥이 당시 혁신을 위해 김세연이 쏘아올린 작은 화살을 지워버린다. 단식 명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단식을 마친 뒤 황교안의 첫 행동은 당직자 일괄 사표 수리였다. 여의도연구원장(김세연)은 당연히 포함됐다.

#뜬금포의 압권은 지난 1월3일 광화문에서 나온다. ‘한국당 패싱’ 속 예산안,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공직자수사처(공수처)법 등이 처리된 직후 열린 집회에서다. 그는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한다”는 몰정세적 발언을 한다.

‘오만한 여당 독주’ 프레임이 ‘황교안, 험지 출마’로 대체된다. ‘종로 빅매치’ ‘이낙연 vs 황교안’ 등의 기사가 쏟아진다. 전적으로 언론이 아닌 황교안 스스로 만든 작품이다.

그 발언이 나온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답이 없다. 모든 언론은 황교안 출마지 관련 기사를 되풀이하느라 바쁘다. 서울 지도를 펴 놓고 종로, 용산, 마포, 양천, 영등포 등을 살핀다.

“종로 안 나가면 보수가 일어설 기회를 막는 것”(이석연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현 대표는 양지, 전 대표는 사지”(홍준표 전 대표) 등의 비판이 거세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의 시각도 있다.

정치에선 어떤 선택이든 명분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시점(타이밍)이다. 시험 시간에 답안지를 못 내면 낙제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해도 늦었다는 얘기다. 

미래 비전과 가치는 물을 필요도 없다. 정치인 황교안의 실력이다. 영국의 조지 버나드 쇼 자신이 쓴 묘비명이 떠오른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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