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몸싸움 결과는 '동물국회'와 '식물국회'

[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2회-上] 20대 국회의 현주소

강주헌 기자 이원광 기자 김예나 인턴기자 l 2020.03.21 06:00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건강한 목소리 사라진 '막말국회', 병들어가는 대한민국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여론의 비판이 거셌지만 같은달 27일 김 의원은 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강성 보수 지지층의 표를 확보하면서다.

◇막말의 탄생…‘이분법’의 정치

막말은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이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 극단의 대결로 만들기 가장 좋은 무기다. ‘타락한 진영의식’의 내용이 왜곡이라면 형식은 막말이다.

김순례 의원의 문제적 발언이 나왔던 공청회는 김진태·이종명 한국당 의원 주최로 열렸다. ’5·18 민주화 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에게 판을 깔아줬다. 5·18 민주화 운동을 향한 거침없는 폭력이 이뤄졌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의 막말은 강성 지지층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정치인들은 막말로 기본 지지 기반을 확보한다. 극단으로 가서 외치는 게 먼저다. 진영을 대표하는 합리적 목소리는 급하지 않다. 막말의 파급력은 사안의 전체를 조망하는 걸 잊게 한다. ’맞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을 요구하는 동시에 강요한다.

막말이 진영내 건강한 목소리를 해치는 것은 여권도 다르지 않다. 정봉주 전 의원은 점퍼 색을 운운하며 진영 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공격 대상은 같은 진영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정 전 의원은 ‘빨간 점퍼 민주당’이라는 제목으로 금 의원을 겨냥해 “내부의 적이 가장 위험한 법”, “민주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최소한 파란 점퍼를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 의원이 ‘조국 사태’에서 당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표결 당시 당론과 달리 기권표를 던진 것을 향한 저격이었다. 강성 지지자들은 연일 금 의원을 향해 문자폭탄 등을 보냈다. 결국 금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주당이) 조국을 끊어내지 못한다”며 “팬덤 정치를 하다가 팬덤의 늪에 빠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공수처'설치를 반대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야 모두 ‘타락한 진영의식’ 대결의 수혜자

최근 1년간 국회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르면서 정쟁의 연속이었다. ‘식물 국회’ ‘동물 국회’만 존재했다. 매일 대치하고 서로를 향해 “대화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비판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원내대표는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곧 휴지조각이 됐다.

여당을 중심으로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구성됐다. 한국당은 ‘투쟁’ 일변도로 나섰다.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 규탄 집회를 주재하고 지난해 9월 삭발, 같은해 11월엔 단식을 감행했다. 지지층을 총력 동원한 광화문 집회도 진행했다.

공수처 등 내용에 대한 합리적 논쟁은 없었다. ‘타락한 진영 의식’은 대치·농성만 강요했다. 여야 모두 대결·대립의 절대적 수혜자였기에 이를 즐겼다. ‘타락한 진영의식’을 키운 셈이다.

◇‘타락한 진영의식’, 선거법도 죽였다

‘게임 룰’인 선거법조차 대화없이 만들어졌다. 전례없는 상황이었다. 여야는 강행과 결사 반대로 나뉘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대화에 참여해서 어떻게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사표(死票)를 없애고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한 생산적 토론은 없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다당제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부재했다. 그저 진영 내 이해득실만 따졌다. 그 결과 ‘타락한 진영의식’이 만든 ‘꼼수’와 ‘반칙’만 넘쳐났다.

위성정당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민주당도 비례정당연합에 참여하는 편법을 택했다. 결국 선거법의 취지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선거법조차 ‘타락한 진영의식’으로 왜곡된 셈이다.

피해는 온전히 유권자의 몫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타협점 없이 극단으로 대립하다보니 양쪽 모두에서 타락한 진영의식이 만들어졌다”며 “결국 각 진영에 기대어 혜택을 보는 건 정치인들이고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말했다.




내가 하면 ‘기술’, 남이 하면 ‘꼼수’…협상없는 국회



국회에서 ‘협상’을 찾아볼 수 없다. 협상 대신 단기간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만 판친다. 일하는 국회, 싸우지 않는 국회를 위해 고안했다는 제도는 무력화된다. 기술로 인한 상실감은 상대를 향한 분노로 바뀐다.

내가 하면 ‘기술’, 남이 하면 ‘꼼수’다. 여야는 각 지지층에 기대 기술과 꼼수 개발에만 힘쓴다. 협상의 부재는 정치권 특유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정당화된다. ‘타락한 진영의식’은 세력을 키운다.

◇野 조직적 ‘기술’…‘동물국회’ 재현

지난해 국회의 ‘기술’은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시연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국회 곳곳에서 농성을 펼쳤다. 민주당 의원들의 법안 제출과 회의를 저지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법안이 팩스 등을 통해 전달되자 서류 일부를 집어들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열릴 예정이었던 회의장은 점거·봉쇄됐다.

곧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어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동물국회’의 오명을 씻기 위해 해당 법안 처리를 주도했다.

국회법 165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선 안 된다. 같은법 166조에는 165조를 위반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 행위를 하거나 △이같은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이나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됐다.


◇與 ‘살라미 국회’로 필리버스터 무력화, 4년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은 ‘살리미 국회’라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소수파에 보장된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106조의2에 따라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가 의장에게 제출되면 발동된다.

우선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에 나섰다. 헌법 47조에 따르면 임시회의 회기는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을 뿐, 국회법 등에서도 최소일에 대한 규정은 없다.

임시회 일정을 최소한으로 잡고 폐회한 후 곧바로 임시회를 소집해 필리버스터 법안들을 즉각 표결 처리하는 전략이다. 국회법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다.

국회법 106조의2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 무제한 토론이 종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

야당 시절 필리버스터를 보장받았던 민주당이 집권 후 태도를 바꿨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른바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자 52년만에 본회의 필리버스터를 가동했다. 약 9일간, 192시간여에 달하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야당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

◇“협상 깨야 지지자 호응…타협 필요성 사라져”

정치권이 ‘협상’보다 ‘기술’을 선택하는 경향은 각 진영의 열성 지지자들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보다 협상 결렬 상황이 각 진영에서 더 환영받는 게 현실이다. 이같은 정치 환경에선 협상에 미온적인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협상이 사라지면 ‘타락한 진영 의식’이 대신한다. 극단의 목소리가 당연시된다. 합리적 대화와 타협, 양보는 상대의 논리와 의견을 경청해야 가능하다. 지금 국회에선 협치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가 불가능하다.

박진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바트나’(BATNA·협상 결렬 시 최고 대안)가 존재하지 않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협상을 깨는 것이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의 호응을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협상을 깨면, 그 당사자가 불리해야 한다. 그래야 타협할 마음을 먹게 된다”면서 “무리한 주장을 해서 협상을 깨는 정당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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