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위에 있는 '청와대당'…"내각은 허수아비, 국회는 들러리"

[the300]['대한민국4.0'을 열자][4회-上]

정진우 기자 유효송 기자 l 2020.03.28 06:00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대한민국4.0'을 시작할 수 있다.


미세먼지에 뒤덮힌 청와대 모습.




내각·국회는 '병풍'…권력 독식 靑, 극단적 진영갈등 키웠다



# 2016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불허한다. 그해 2월까지만해도 허가를 내주는 분위기였는데 봄을 지나며 갑자기 기류가 바뀐다. 관가에선 청와대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1년 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청와대 인사들은 ‘국정 농단’ 관련 재판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증인으로 나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 ‘박 전 대통령이 SK 합병을 우려하고 있다. 합병에 반대 의견이시다’며 공정위에 이를 전달하라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SK그룹은 최순실씨가 추진하던 K스포츠재단 출연금 요청을 거부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청와대는 권력의 최정점이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불린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면 언젠간 탄로난다.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죗값을 치른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독선이 ‘실패한 정부’를 만든다고 기록한다.


◇모든 권력 독점하는 '대통령제'

보수 혹은 진보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정권 초·중반엔 호의호식한다. 하지만 정권 말기엔 힘을 잃은 채 무너진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회가 교체돼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우울한 말년은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탓이다.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입법권 △감사권 △집행권 등 5대 권력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당연한 결과다.

청와대의 핵심 역할은 대통령 보좌다. 청와대는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청와대는 대통령 의제를 관철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일하기 보다 오로지 대통령 받들기에 열중한다.

그러다보니 각 부처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실제론 압박)’하는 청와대 힘에 눌린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 정권 중·후반엔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부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많다.

명분은 ‘국정 철학’이다. 하지만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구조만 강화된다. 부처가 다루고 집행해야 할 중요한 현안이 배제된다. 청와대 입장이 최우선시된다.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할 때 ‘책임 총리’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청와대 정부’의 연속이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선 총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할 내각도 힘을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실행위원회 회의에서 국민 안심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건전한 당청관계? 청와대 앞에선 작아지는 여당

국회도 대통령과 청와대 앞에선 소극적 권력 기관이다. 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반대하는 입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가 장관 인사청문회를 열고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집권여당은 대통령 임기 초반엔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임기 후반엔 차기 대통령 후보의 시녀로 변한다. 오직 청와대의 권력 장악을 위한 캠프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와대는 여당 위에 있는 거대한 정당이다. 역사는 길다. 김대중 정부때까진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당청간 건전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덕분에 이 제도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청와대는 집권여당 위에 군림하는 힘이 센 정당의 역할을 하는 게 현실이다.

야당은 현직 대통령과 청와대를 무조건 비판한다. 그들이 실패하는 게 야당의 존재 이유다. 다음에 집권을 위해서다. 그리고 실제 정권이 교체되면 똑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제에선 내각은 허수아비, 국회는 들러리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요하다고 결정한 일에 대해선 집권여당이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의 힘을 모은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지키거나 죽이는 ‘타락한 진영의식’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선에서 40~50% 안팎의 득표률로 집권을 해도 100%의 권력을 갖는다. 각 진영은 권력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야권의 정치적 공격은 대통령과 청와대로 집중된다. 수위가 강할수록 지지층의 반응이 좋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대로, 못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비판해선 득점이 어렵다.

청와대도 정치 대신 행정에 중점을 둔다지만 쏟아지는 비판을 감내하기 쉽지 않다. 방어와 역공에 나서지 않는 여당이 얄밉다. 오히려 강성 지지층의 반격이 고맙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두고 오가는 생산적 비판과 합리적 옹호는 설 곳이 없다. 외교·안보·경제·행정 등의 논쟁은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 양 극단에 매몰된 ‘타락한 진영의식’은 커진다. 한쪽에선 “우리 대통령을 살리자”며 거리에 나서고, 다른 한쪽에선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광장을 채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력 독점 행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여야의 협치는 불가능하다“며 ”절대 권력을 두고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극단간 대결은 당파적 이익을 위해 중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靑 간판 달고 "정부 수호"…너도나도 금배지 레이스



청와대 간판을 달고 나온 ‘청(靑)돌이’들이 여의도로 향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70여명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에 도전했다. 그 중 27명이 ‘청와대 출신’이란 명함을 갖고 금배지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과거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MB맨’들은 이 전 대통령 임기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2012년)에 뛰어들었다.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윤진식 전 정책실장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 4년차인 2016년에 실시한 20대 총선 역시 친박 코드 청돌이들이 당선됐다. 민정수석 출신인 곽상도 의원과 김선동·주광덕 의원 등 정무비서관 출신도 배지를 달았다.

◇청와대는 금배지용 징검다리?

문재인 청와대의 ‘입’을 담당했던 이들이 앞다퉈 출격했다. 박수현 전 대변인과 고민정 전 대변인은 민주당 후보로 각각 충남 공주 공주·부여·청양과 서울 광진을에 전진 배치됐다.

범여 비례 정당인 열린민주당에는 김의겸 전 대변인이 합류했다.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은 서울 구로을에 전략공천됐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시중원구),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구갑),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구갑) 등이 경선 문턱을 넘었다.

이들은 출마의 변으로 ‘문재인 정부 성공’을 내걸었다. 국회 입성 이유를 ‘정권 안정’으로 귀결시킨다. 열린민주당은 당규에 ‘비례대표 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한 정책과제 실현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청와대에서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만큼 전문성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본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들까지 합치면 경력 ‘1년’을 채우지도 않고 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적잖다.

대통령을 보좌해야할 청와대 인사들이 수시로 바뀌면 탄탄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청와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선거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청와대 출신들이 총선에 나서려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때까지 열심히 일한 후에 제대로 평가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며 “청와대 인사들이 수시로 선거에 차출되면 도대체 일은 누가하냐”고 지적했다.
제21대 총선을 한달 앞둔 3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靑 출신의 입법부행…“진영 갈등 키울수도”

전문가들은 청와대 출신의 여의도행이 ‘진영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를 지키겠다”는 출마의 변이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대립을 일으킬 수 있다는거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열린민주당과 같은 곳에서 진영 논리에 따른 문제점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검찰 쿠데타와 같은 논리를 갖춘 청와대 출신들이 국회에 들어와 같은 논리를 펼치게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입법부는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데 후보자들이 ‘정부 수호’를 위해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민주주의는 효율성과 일사분란함을 담보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정부 출신 인사들은 옛 운동권 출신이 많고 정치적 의욕이 커 역대 정부보다 총선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며 “만일 청와대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 있다면 국가에 대한 사명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요한 건 국민의 선택”이라며 “국민들이 투표할 때 청와대라는 타이틀 하나로 뽑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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