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박형준과 차명진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김성휘 기자 l 2020.04.23 06:05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약칭 혁신통추위)이 1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통합을 추진함에 있어 혁신, 확장, 미래 세 가지 키워드를 강조했다./사진=홍봉진 기자


#30년 전인 1990년 독특한 정당이 하나 탄생한다. 민중당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재야와 운동권 일부는 합법적 정당을 통해 뿌리내리고자 했다. 이른바 "혁명에서 개혁으로" 노선이다. 

민중당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2년 총선에서 당선자를 한 명도 못내고 해산한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멤버들이 김영삼정부 시절 '문민개혁'을 지지하면서 정치권에 대거 진입한다. 개혁적 보수 블록을 만든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MB) 중심으로 결집했다. 마침내 정권도 잡는다.

당시 민중당 지도부가 장기표, 이재오, 그리고 김문수 등이다. 함께한 면면 또한 쟁쟁한 이름들이 됐다. 김성식, 정태근, 김용태…. 하나같이 한나라당 시절 신진세력으로 활약한다. 거기 박형준도 있었다. 

고려대 78학번인 박형준은 1980년대 젊은 이론가이자 '필사'로 성장했다. 거리시위에서 최루탄 파편을 눈에 맞아 실명 위기도 겪는다. 1990년 즈음엔 '운동권 선배' 장기표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민중당 강령 작업에 참여한다.

민중당 해산 후엔 김영삼정부 청와대에 정책자문을 하게 된다. 2004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다. 당시 개혁공천으로 화제에 올랐던 공천심사위원장이 김문수였다. 박형준은 이명박정부에선 청와대 홍보수석 등 '브레인'으로 통했다.
[부천=뉴시스] 이종철 기자 =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가 15일 오전 경기 부천시 범박동 일신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차명진 캠프제공). 2020.04.15. jc4321@newsis.com


#민중당에 차명진도 있었다. 그림을 곧잘 그리는 차명진은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김문수가 민중당 구로갑 지구당위원장일 때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았다. 국회의원 김문수의 보좌관이었고 김문수가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자 경기 부천 소사 지역구를 물려 받았다(17·18대 의원). 

19대 총선 후 내리 낙선했다. 정치적 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세월호에 대해선 수차례 부적절한 표현을 했다. 마침내 '세월호 텐트' 발언으로 총선 막판을 뒤덮었다.

박형준은 애초 보수진영 통합과 총선에 뛰어들며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전도, 경험도, 전략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옛 동료의 막말도 허탈했다.

15일 밤 KBS 개표방송에 출연한 박형준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막판 일주일, 경합지역을 상당수 잃었다고 했다. 민심은 '막말러'뿐 아니라 그가 소속된 당에게도 싸늘했다. 차명진은 다음날 페이스북에 "(박)형준아, (유)시민아. 우리 친구잖아"라고 썼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소속 후보들의 막말 논란에 대해 사과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4·15 총선 후 보수 정치진영이 위기다. 이 세력을 대표하는 미래통합당은 지역당의 길, 특정 지지층에 기대는 극우화가 우려된다. 통합당의 반전 카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다. 그러나 과거를 답습하는 방식으로는 몰락을 막기도 어렵고 재건 성공도 어렵다.

박형준은 진보적 사상을 가졌지만 경험하고 사색하면서 생각을 바꿔 나갔다. 마르크스주의에 갇히거나 주체사상에 경도되지 않았다. 전체주의도 극히 경계하게 됐다. 이명박정부에선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국회사무총장 시절 '공진국가' 등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세상은 왼쪽과 오른쪽 두 눈으로 봐야 한다"는 표현을 즐겨쓴다. 

박형준의 궤적과 생각은 지금 통합당에 무엇이 필요한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구태의연한 인물이 아니라 참신한 리더가 필요하다. 비전과 방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3040세대에게 기회를 주자는 말도 콘텐츠가 없으면 공허하다. 무엇보다 합리와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음모론에 빠지지 않아아 한다. 

그래서 더욱 '차명진'보다는 '박형준'이다. 그는 저서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2014)에서 "아직도 나는 꿈을 꾼다"며 "다만 나이가 들면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생각의 흐름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느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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